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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May 21. 2020

만약 당신을 마주친다면

흔하디 흔한 퇴근길이었다. 다를 것이라고는 평소와 달리 지하철을 택했을 뿐.


흔하지 않은 이유를 꼽자면, 유난히 일이 많아 늦은 밤 퇴근했다는 것 뿐이었다. 며칠 간 계속되는 야근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서서가기보다는 앉아서 갈 수 있는 지하철을 택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환승역에 도착해서 힘든 발걸음을 옮겨 다음 지하철을 탔다. 고개를 들고는 당신을 마주쳤다.


만약 당신을 마주친다면


하고는 생각해뒀던 말들이 있었다. 잘 지냈냐는 말부터 시작해서, 당신이 꿈꾸던 것은 이루었냐고, 당신은 해낼 줄 알았다고.


정작 당신을 마주한 나는 아무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애써 못본척, 다른 입구로 향하던 척,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랬다, 함께 있을 때면 다투면서도 매번 같은 칸에서, 같은 곳에 서서 지하철을 타고, 에스컬레이터를 기다리기보단 걸었다.


그 날은 그랬다. 아니 사실, 그 길로만 다녔다. 언젠가 한번은 마주칠까 하고.

그게 어느덧 습관이 되었고, 내 몸이 날 자연스레 이끌 때쯤 당신을 만났다.


더 일찍이었다면 달랐을까?

더, 좀 더 일찍이었다면.


당신을 앞질러 걸었다


지하철역을 나와, 그날의 일은 마음속에 담아두기로 했다.

문자를 보내지도, 카톡을 보내지도, 전화를 하지도 않았다.


오늘은 늦은 밤, 막걸리 한 잔에 거나하게 취해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누군가 전화박스에 들어가 슬픈 표정으로 익숙한 듯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왜 그곳에 있었을까, 헤어진 연인에게 차마 못다한 말을 남기고 싶어서 였을까? 나도 그 전화박스에 들어가 익숙한 듯 당신의 번호를 누르고 싶어졌다.


그곳에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전화박스를 지나쳐와 낡은 일기장을 핀다.


오늘의 난, 잠시 그때의 당신을 만나고 왔노라고, 그래서 참 반가웠다고.



누군가의 과거, 그 과거를 회상하는 따뜻한 이야기에 저 또한 잠시나마 따뜻한 과거를 생각해봤습니다. 소설 아닌 소설이고, 진실이 아닌 진실입니다.


그 때의 당신을 마주한다면, 여러분은 무슨 말이 하고 싶으셨나요?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노마 드림.


*Main photo : Thanks to Fabrizio Verrecchia for sharing his work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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