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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May 10. 2020

나의 첫사랑, 합니다.

시작이랄게, 꼭 거창하지만은 않다.

나는 군대에서 사랑합니다를 배웠다.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하는 이야기. 군필남자로부터 듣기 싫은 몇가지 이야기라고 하지만, 군대는 내게 9년째 이어가고 있는 그리고 조금씩 커가고 있는 사랑을 배운 곳이다.


불과 1시간 전, 어머니와의 통화에서도 그랬지만 나는 전화를 끊기 전 늘 "사랑합니다"(실제로는 사랑하외다~, 사랑해요~ 등으로 변형되기는 하지만)로 전화를 마친다. 내게 이런 습관이 생긴 것은 21살, 군대때부터였다.


내게 훈련소의 기억은 두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어머니께 처음 전화했던 순간이고 다른 한 순간은 침낭을 뒤집어쓰고 행여나 불빛이 세어나가 혼날까 긴장하며 라이트펜(펜촉에 불빛이 달려있다)에 기대어 어머니께 편지를 쓰던 순간이다. 


<어 엄마!, (흡) 어.. 나는.. (흡) 잘 지..(흡)...> 부모님께 전화하는 훈련병들의 첫 모습은 조인성의 주먹울음 장면과 흡사하다.


군대에서는 10시가 넘으면, 잠을 자지 않는 것 또한 얼차려의 대상이었다. 훈련에 치이고 혼나지는 않을까 하루 종일 긴장을 하고 나서 침낭에 몸을 뉘이면 정신차릴 새도 없이 잠이 들었다. 방금 누운 것 같은데, 아침기상나팔에 힘든 몸을 일으켜 부랴부랴 모포를 정리하거나 누군가 깨워주는 "하노마, 하노마, 근무 들어가야 돼 일어나" 하는 목소리에 힘든 몸을 일으키기 바빴다.


당시 나에게 편지를 써줄만한 친구들이 많지도 않았는 데(친구들은 주로 동성이고, 나보다 더 먼저 군대에 가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는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어머니의 편지에 답장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옆자리 친구의 라이트펜을 빌려 침낭을 머리 끝까지 덮고서는 편지를 써내려갔다.


한자, 한자 적어나가다가 문득 미안함에 눈물이 쏟아졌다. 군 입대 전에는 생각조차 못했던 것들이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어머니께 어떤 자식이었을까? 막내라는 이유로 철없이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왜 어머니께 조금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하는 여러 생각에 울음소리를 참아가며 끅끅 울었다.


나는 입대하기 전까지 그렇다 할 사고를 치지도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그렇다 하게 두각을 내보인 분야도 없었다. 친형은 중학교 시절 빨리 시써서 내라는 선생님의 압박에 못 이겨 시를 제출하고는 농림부장관상에 쌀을 한포대 어깨에 짊어지고 왔다. 대학시절에는 장학금을 받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도 했고, 좋은 성적으로 단상에 여러번 올라가기도 했다. 반면 나는 단상에 올라가지도 않았고, 그저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져 하루종일 게임을 하는 철딱서니 없는 막내였다. 


20년이 지나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지만, 정작 내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 마땅한 선물이 없었다. 이렇게나마 편지를 적어서 보내드리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 사실에 너무나도 눈물이 났고, 미안함에 한번 더 눈물이 났다.


그 쯤이었다.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군 입대 후 부모님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은 휴가가 아니고서야 거의 없다. 나는 하루에 한번, 시간이 되면 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이런저런 군대 얘기를 드리고는, 가족의 이야기를 묻고 전화를 끊기 전 꼭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군대시절부터 쌓아온 습관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 나도~" 정도로 반응을 해주시고는 하는 데 이마저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처음엔 당황하셔서 인지 별다른 반응을 안하신 적도 있었고, 머쓱하게 "나도 사랑해 아들~" 하고는 전화를 끊으신 적도 많았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이들에게

처음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말하던 순간은 정말 머쓱하고, 쑥쓰러워서 꺼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습관이 되고 나서는 온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 형, 할아버지, 할머니, 더 나아가 나의 친구들까지,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서스럼없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이 어렵다 뿐, 입에 붙이고 나면 정말이지 쉽다.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 망설인 적이 한번 쯤은 있을 것이다. '쑥스러운데..., 어떻게 말하지..' 고민하다 꺼낸 당신의 사랑한단 한마디에 환하게 펴지는 상대방의 얼굴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곁에 있는 부모님, 그리고 나의 가족은 항상 그런 사랑을 내게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다. 혹은 가족이 아니더라도 내 곁에 소중한 이들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내게 다가와 주었을 것이다.


오늘은 한번쯤 쑥스러움을 참고 꺼내보기를. 


그리고 늦기 전에, 한번 더 말할 수 있기를. 당신의 시작이, 거창하진 않더라도 당신의 삶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노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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