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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노마 Nov 04. 2020

OO이 엄마 아니고, 김박사님이십니다.

우리 가족 관찰일기 : 부모님편-엄마

우리가족 관찰일기는 내가 젊은 시절의 우리가족 모습을 담아두고자 쓰는 글이다.
우리 가족 관찰일기 : 부모님편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좋아하는 풍경사진에서부터 정보 캡쳐까지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저장되어 있음에도 우리가족에 관한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옛날 찍은 사진을 다시 찍어둔 정도다. 누구나 원한다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담을 수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관련된 사진은 많지 않다. 특히, 부모님 사진이 더 그렇다.


아래 영상은 KB그룹의 한 광고이다. 젊은 아빠들을 모아다 놓고 “핸드폰에 아이의 사진은 몇장있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등의 질문을 하고는 ‘아이’ 라는 단어를 ‘아버지’로 바꾸어 되묻는다. 응답자들은 그저 벙-찐 표정일뿐이다(영상은 꼭 티슈를 준비해야 한다).
https://youtu.be/9-VkbFe2U3U

‘[KB금융그룹_기업PR]하늘같은 든든함, 아버지(몰래카메라)편’ 출처 : 'KB금융그룹' 유튜브채널,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몇장 안되는 부모님 사진만 있을 뿐이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도 좋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의 세월, 그리고 모습을 글로 남기고자 한다.



Photo by Gemma Evans on Unsplash



김박*의 Dust In the wind

*김박 : 이 표현은 내가 어머니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인데, "김박사"의 줄임말이다. 이외에도 김박사님, 김여사님, 엄마, 어머니, 김OO(본명)씨 등이 있다.


정오~오후 즈음이면 우리집에는 기타소리가 울려퍼진다. 코로나로 인해 기타영상수업을 수강하다 보니 혼잣말로 '아이고 선생님 너무 어렵다니깐요~~' 하고는 하소연 하는 소리도 들린다. 도레미파를 시작으로 여러 코드가 들리고, 어느 순간 부터는 꽤나 그럴싸한 기타소리가 들린다. 트로트는 관심 없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트로트를 흥얼거리며 기타를 치기도 한다. 


언제쯤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는 동네 주민센터에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분명 어릴 때 Romance 정도는 쉽게 쳤던 것 같은 데, 초급반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는 의아했다. 기타를 칠 줄은 모르지만 듣기만 좋아했던 나는 평소 내가 좋아하던 2개의 곡을 들려주며 이 노래를 쳐달라고 했다.

하나는 Kotaro oshio의 'Twilight', 또 하나는 Kansas의 'Dust in the wind' 였다. 다닌지 얼마 안 됐을때는 이건 치기 어려운 곡이라며 마다했다. 그래도 언젠가 칠 수 있게 되면 꼭 쳐달라는 아들의 부탁에 기타반에서 받는 악보 이외에도 악보대 한켠에는 늘 'Dust in the wind'를 가져다 놓았다. 


연습은 주로 <음계연습-영상을 보며 배우는 노래-이전에 배웠으나 더 가다듬기 위해 연습하는 노래> 정도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중간에 고생을 좀 하다가도 마지막즈음 가면 능숙한 기타소리를 냈다. 그렇게 기타반에서 주어진 곡들만을 연습하는 줄 알았던 어느 날, 김박은 나를 불러 꽤나 능숙한 'Dust in the wind'를 연주해주었다. 내가 없을때 몰래 연습을 했던 것인지 소리가 꽤나 그럴싸한 수준이었다.


20살 대학을 시작으로 약 10년을 넘게 나와살다 돌아간 집에는 어머니의 기타소리가 한가득이다. 회사-집안일로 가득했던 어머니의 삶만을 보다가, 노년에 자식들을 모두 키우고는(물론 아직도 애기를 다루는 거마냥 걱정을 한가득 표현하시지만) 이제서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때로는 감사하기도 하다.


날이 추운 날이면 손이 얼어 기타가 잘 안 쳐진다며 아쉬움을 토로하신다. 조금 안쳐지면 어떻고 잘쳐지면 어떠랴, 그저 집안 가득 울려퍼지는 기타소리가 내 바램보다 더 오래, 더 많이 들려오길 염원해본다.


김박, 그리고 활자들

올해 2월, 1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나의 프로젝트 <12가지 선물을 당신에게>의 첫 선물, '글쓰기 모임'을 선물받은 김박은 아직까지도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서 이제는 필사, 영어필사, 영어공부, 그리고 브런치까지 활자에 푹 빠져 살고 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책을 필사하고는 점심을 먹은 뒤면 커피 한 잔을 내려 여유를 즐기고 기타를 친 후, 느지막한 오후 즈음 활자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책읽기부터 시작해서 글쓰기, 필사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때로는 늦은 밤에 "아 맞다 오늘 영어필사 안했구나!" 라며 부엌불을 키고는 식탁에 앉아 필사를 하기도 한다.


글쓰기 모임을 알려주며 'Brunch'를 알려준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게 작가신청은 어떻게 하며 목차는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떻게 하면 작가가 쉽게 되는 지 등 각종 질문을 이어가던 김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브런치 나우 한 카테고리의 대표작가(?)로 표시될 만큼 능숙한 글쟁이가 되었다. '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쓰면 괜히 분위기 깨는거 아니야??' 라며 늘 발행을 망설이던 김박의 글은 꽤나 많은 이들이 읽어줄 만큼 그 세월을 잘 담아내고 있었다(단점이라면 정말 하루종일 브런치를 들여다보신다, 다음 핸드폰은 조금 큰 것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어머니의 인생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 한 후 약 10년이 흘러서야 본가로 돌아왔다. 대학-대학원-회사에 이르기까지 대학생이면 논다고 한창을, 대학원생이면 공부를 한다며 한창, 회사를 다닐때는 바쁘다며 한창,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나서 돌아온 집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김박이 있었다.


많은 집안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개님(내가 키우던 개를 부르는 나만의 애칭), 친구 혹은 게임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이른 아침에 등교해 늦은 밤에나 귀가하는 일상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생각은 커녕 학교에서의 삶을 버텨내기도 바빴다. 그렇게 보낸 유년시절 이후에는 정신없이 부어라 마시고, 사회에 나가겠다며 발버둥쳤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는 젊은 시절 에너지 넘쳤던 어머니 대신, 이젠 조금 여유를 갖고 세월을 채워가는 김박이 있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묻지도 않았지만 김박은 스스로 그런 것들을 찾아가며 세월을 채워나가고 있었다(글쓰기는 내가 한몫했지만).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닌, 김박사의 그 모습 그대로 이기를


OO엄마, OO 학생의 부모님 으로 불리던 삶을 지나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김박의 모습을 보며 죄송한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늘 함께한다. 지금처럼만 자신의 세월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나의 어머니 아니, 김박사가 되기를 바래본다. 이젠 내가 당신의 삶을 내가 응원할테니..



여러분의 부모님은 어떠한 모습으로 어떻게 세월을 채워가고 계신가요? 혹은 당신은 어떠한 자식으로 어떠한 부모님으로 살고 계신가요? 이 글을 읽은 하루 쯔음, 나 혹은 나의 가족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다음 편은 "아빠편(가제:수원에서 돌아온 시꺼먼 하농부, 웃으며 돌아왔네)"이 연재될 예정입니다 :)


오늘도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노마 드림.

Main Photo by Sharon McCutche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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