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성숙
모든 고통은 개별적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동일한 문제라 하더라도 각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모두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절망적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비교적 잘 감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될까? 개인의 성격적 특성, 살아왔던 삶의 경험, 성별, 연령, 직업, 거주지 등 다양한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문제 앞에 서 있다고 해도, 우리 각자가 본질적으로 매우 다르기에 상대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큰 착각이다. 그 착각을 깨닫지 않는다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게 되고,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하게 된다.
몇 해 전,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집 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면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자신의 포켓몬 카드가 찢어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건넨 포켓몬 카드를 보니 많이 찢어진 것도 아니고 귀퉁이가 살짝 찢어졌을 뿐인데, 아이는 마치 나라를 잃은 듯 대성통곡을 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우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아이의 속상함을 충분히 공감하기보다는 “에이, 뭘 이런 걸로 그래”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리고 상황을 넘겼다.
내가 아이에게 내뱉었던 말,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
이 말 혹은 생각은 우리가 타인, 특히 나보다 어리거나 지위가 낮거나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대상에게 쉽게 향한다. 상대의 고통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상대를 미숙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상대의 입장에 온전히 서지 않고, 나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타난다. ‘공감’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잠시 벗어나 상대방의 위치로 가는 것이다. 40살 어른의 시각으로 포켓몬 카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8살 아이의 시각으로 포켓몬 카드를 봐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자세를 취할 때, 비로소 상대방의 개별적인 고통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나의 위치를 잠시 벗어나 상대의 위치에 서고자 하는 공감의 자세가 없다면, 차라리 입을 꾹 다물어야 한다. 적어도 해를 끼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