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의 성숙
빈곤보다 더 잔인한 것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배제에서 오는 고통이 훨씬 더 크다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물질적 측면에서가 아닌 관계적 측면에서의 빈곤은 어떻게 우리에게 경험되고 있을까?
여러 사회학자들이 지금의 시대를 정의하기를 '초연결시대'라 한다. 지금의 시대는 디지털 혁신과 네트워크의 발달로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와도 손쉽게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거나 교류하는 사람의 수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에도 압도적인 차이를 보인다.
다소 오래된 자료이기는 하지만, 2009년 당시의 한 조사(머니투데이, 2009.10.30)를 보면,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500명 이상인 사람이 45%, 1,000명 이상 23%로 과반 이상이 500명이 넘는 연락처를 등록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약 15년이 지난 지금 연락처 수는 훨씬 더 늘었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연결도 그 이상일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의 연결고리 속에서 정작 내 마음을 속 편히 털어놓을 만한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초연결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지 못해 외롭다. 아니 고통스럽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나오미 아이젠버거는 그녀의 연구(2003)에서 사이버 볼 실험을 통해 사회적 배제의 경험이 단순히 기분이 아니라 실질적인 고통임을 밝혀냈다. 사이버 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참여자를 배제하였을 때, 그 참여자가 신체적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과 동일한 뇌 영역에서의 자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는 관계의 풍요 속에서 관계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관계 빈곤에 대한 해법은 잘 알지 못하고 얕은 수준에서 맺어지는 수많은 관계와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넓고 얇게'가 아닌 '좁고 깊게' 타인과 관계 맺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배제가 실질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타인과의 아주 깊은 친밀감을 공유하는 것은 무엇이 되겠는가? 바로 치유이자 회복이 된다.
기억해야 한다. 나를 치유시키고 회복시키는 것은 SNS에서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누르는 '좋아요'가 아닌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과의 깊은 유대감임을 마음에 새기자.
출처: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09102802494787921&utm_source=chatg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