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간)이 되어간다는 건

by 노샘


"어이구 도대체 언제 인간 될래?”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왜 인간됨을 논할까? 그것은 인간됨의 또 다른 조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슷하게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는 표현도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데, 이 역시 인간으로서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어떤 조건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바로 ‘성숙’이다. 성숙이라는 특정한 단계에 도달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때 비로소 ‘인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성숙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나이 들어감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례로 어린아이에게 어른의 성숙함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어린아이라는 것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른이 어른답지 못하고 아이처럼 행동할 때, 이를테면, 식당에서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투정을 부린다든지, 공공장소에서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시끄럽게 소리를 낸다든지,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만을 한다든지 등의 행동에는 으레 그 사람의 인간됨을 의심하는 말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은 성숙해 가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 번 태어나 이 땅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성숙’이라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성숙을 향해 나아가야 하며, 점점 더 인간이 되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지는 삶의 목적 중 하나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런 성숙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유아기의 자녀들을 키워 본 부모들이 한 번씩은 다들 경험했을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컵에 물을 따르는 것이다. 아이가 물통을 들고서 컵에 물을 따르는데 보기에 조마조마하다. 넘치기 전에 멈출 수 있을까 싶은 염려가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넘치고야 말았다. 컵에 물이 얼마나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이 없고, 물을 붓는 힘 조절에도 미숙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성숙이 바로 이런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어느 정도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담아낼 수 있는 양도 작다. 그래서 쉽게 물이 넘치고 주변을 어지럽히게 된다. 예를 들면, 누군가의 말 한 마디나 별것 아닌 문제에도 과도하게 반응하며, 자기를 비하하거나 타인을 비난할 수 있고 혹은 사회에 대해 부적절한 방식의 분노를 드러낼 수도 있다.



성숙함은 바로 나의 그릇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릇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진짜 그릇 바꾸듯, 쓰던 그릇 버리고 큰 것, 새것으로 바꾸면 될까?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다시 태어나야 된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성숙은 그렇게 한순간에 물건 바꾸듯이 바꿈으로써 이루어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그릇을 키워가야 한다. 여기서 기억할 점은 우리가 완성된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릇을 구울 때의 과정을 살펴보면, 흙 반죽을 마치고 형태를 만든 뒤 고온에서 2차례 굽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마친 그릇을 다시 깨서 그릇을 키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굽지 않은 그릇 혹은 초벌에 그친 그릇은 다시 깨서 형태를 바꾸는 작업이 가능하다.



우리가 완성된 그릇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완성의 그릇이며, 계속해서 완성됨을 향해 성숙함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그릇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 과정의 핵심이 바로 ‘깨어짐’이다. 일부를 깨고, 다시 덧대어서 크게 만들고, 또다시 깨고, 덧대고 이런 과정이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는 점차 큰 그릇이 되어간다.



나의 깨어짐을 받아들이면서 나라는 그릇을 점차 확장해 나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성숙을 향하는 길이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책 역시도 어떠한 답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책과 함께하는 시간 동안 우리 각자의 깨어짐과 덧댐의 과정을 거치고, 이전보다 조금 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초연결시대의 역설: 함께이면서 혼자인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