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의 성숙
삶을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실패’다. 실패 중에서도 가장 뼈 아픈 실패는 무엇일까? 실패할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부딪히게 되는 실패가 가장 아프다.
내가 경험한 실패 중 기억에 남는 일은 대략 8년 전 석사학위 논문 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한 일이다. 그 일만 똑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으나 그 당시 나에게는 매우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논문 완료 후 심사 단계도 아닌 계획 단계의 심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통과되리라 생각했는데, 나의 예상과 달리 심사위원들의 아주 혹독한 피드백과 함께 계획 단계에서 조차 통과하지 못한 흑역사를 남긴 것이다.
“이 자료가 지금 심사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심사위원의 냉철한 지적에 나는 무너져 내렸다. 심사를 마치고 돌아가기 위해 차에 타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고, 집까지 2시간 거리를 달리는 내내 눈물이 났다.
억울했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내게 주어진 모든 연차를 대학원에 사용해야 했고, 당시 아이들이 어려 육아와 집안일의 필요 역시도 등한시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느냐며 원망을 쏟아냈다.
어차피 심사에서 탈락하여 한 학기가 더 지연되어 버린 상황에서 약 보름 정도는 논문의 ‘논’ 자도 생각하지도 쳐다보지도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당시 심사위원들의 의견과 심사 내용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논문 계획서의 분량 자체가 지나치게 적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2~30페이지의 분량을 작성한다면, 나는 고작 10페이지 내외의 계획서를 준비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선행연구에 대한 검토나 연구의 계획이 치밀하게 준비되지 않은 것도 눈에 들어왔다.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내게 준비가 된 줄 아냐고 했던 그 말도 이해가 되었다.
그 당시의 나는 일로도, 학업으로도, 가정에서도 여러 역할 요구 속에서 단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무척 바쁘게 지냈다. 그런 과정에서 논문 역시 빨리 해치워야 할 일중 하나였고, 그러다 보니 세부적인 사항들은 미처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채, 그저 빨리 끝내는 것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그렇게 나 자신의 과오를 되짚어 보고, 나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파악하여 수정 보완을 거치고서 비록 한 학기가 지연되기는 했으나, 나는 논문 계획서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석사 학위 논문 결과심사도 완료하고, 또 해당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도 하면서 그 다사다난했던 논문 작업을 모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때,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좌절하지 않고, 실패의 두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는 무엇으로 비롯되는가? 바로 실패에서의 철저한, 그리고 정직한 자기 성찰로 비롯된다.
논문 과정에서 첫 실패를 경험했던 나의 지배적 감정은 억울함과 원망이었다. 그런 내가 나의 준비 과정을 충분히 돌아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계속해서 나는 심사위원을 탓하거나 혹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또 다른 누군가, 혹은 세상을 탓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으면, 타인을 오해하고 탓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실패에 묶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의 도전은 마치 늪에 처한 것과 같다. 나아가려 하면 할수록 더 헤어 나오지 못하고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직한 자기 대면과 자기 성찰로 대응한다면, 그 실패의 경험은 다시 성장하기 위한 원동력이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이 된다. 나는 어떤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가? 혹은 실패 속에서 충분히 정직하게 나를 돌아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