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성숙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주 나타나는 반응을 구분해 보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맞아 맞아!’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동의와 공감을 표현하는 경우, 둘째, ‘음~ 그래?’라고 하며, 동의도 부인도 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는 경우, 셋째, ‘아니 아니!’를 외치며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이러한 반응들은 각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유달리 첫째 혹은 세 번째의 반응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첫째 반응과 셋째 반응의 공통점은 판단이 빠르다는 것이다. 빠른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 ‘맞아 맞아’를 외치며 적극적 공감을 하는 사람은 그 반대로 쉽게 ‘아니 아니!’를 말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진화적 관점에서 우리의 뇌는 생존과 안전을 위해 빠르게 위험을 파악하는 것으로 발달해 왔다. 원시적인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포식자가 나타나 위협을 느낄 때 사람은 머리로 생각하면서 대처하지 않았다. 본능적, 반사적으로 도망치거나 숨는 등의 행동을 오랜 기간 해왔다. 이를 미국의 신경과학자 폴 맥린(1913-2007)은 인간의 파충류 뇌라고 불렀는데, 인간의 뇌가 여러 층위에서 발달이 일어나는 중에 가장 오랜 기간 발달해 온 생존 반사적인 영역이라고 설명하였다.
수천만 년의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생존의 위협을 겪어왔던 인간이 지금처럼 비교적 위험이 적고 고도로 발달된 문명 속에서 살게 된 것은 그리 길지 않다. 즉, 우리의 뇌는 위험에 즉각적으로 대비하도록 구축되어 있는데, 현대사회는 그 정도의 위험을 느낄 만한 일이 비교적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협을 느끼고 그에 대해 빠른 판단이 나타나는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다. 현대 사회에서 경험하는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상황과 쉽게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하는 우리는 불안을 경험하고, 그것을 정서적 위협으로 느끼기 쉽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상대에 대한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내가 안전해지기 위해서.
그런데 문제는 나의 생존반사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빠른 판단이 도리어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섣부르게 상대를 규정짓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례를 넘어 폭력이 될 수 있다. 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가 도리어 상대의 안전을 침해하는 아이러니가 발생된다.
그래서 나도 안전하고, 상대도 안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판단을 유보하려는 의식적 노력이다. 우리의 뇌가 이미 빨리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의식해야 한다. 그리고 맞다 틀리다 빨리 답을 내리고자 하는 본능을 거슬러 상대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더 알아보고 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음.. 그래?’라고 반응하며, 좀 더 상대에게 질문하고, 생각해 보는 식으로 우리의 판단을 유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