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성숙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을 때가 있다. 이 말은 한국 사회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관계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어떠한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적당히 넘어가는 태도가 결국 좋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앞서 나오는 좋은 것의 정확한 의미는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의미로 풀어보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좋은 것이라고 바꾸어 말하면서 표현하는 것일까?
넘어간다는 것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해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행동을 과연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이 표현을 사용하는 우리 의식 이면에는 사실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 불편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넘어가는 것’이라는 직접적 표현 대신 ‘좋은 것’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에는 불편함이나 잘못을 바로잡지 않으려는 회피적인 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자기 합리화라는 복합적인 방어기제가 나타나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갈등이나 불편함을 마주했을 때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로 대응하는 것은 표면적이고 단기적인 평화는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이면에는 훨씬 더 복잡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에서의 본질적 문제는 바로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오해가 발생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용기, 불편함을 마주하는 용기이다. 당장 눈앞의 갈등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회피하게 될 때 더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결국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잠깐 보고 마는 사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굳이 이런 불편함을 다루지 않고 넘어가겠지만, 매일 직장이나 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 가족 등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는 사람들과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불편함을 다뤄보는 용기 말이다. 그런 용기가 발휘되어서,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경험이 축적되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훨씬 더 편안하고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갈등이 생겨도 잘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경험적 확신이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