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에서의 성숙
고통의 본질은 불확실성에 있다. 아주 쉬운 예로 손가락을 튀겨 상대방의 이마를 때리는 ‘딱밤’을 생각해 보면, 맞았을 때의 물리적 아픔보다, 맞기 직전 얼마나 아플지 모르는 걱정과 불안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다. 왜? 불확실하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미래의 일들을 걱정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역시도 그 본질에 불확실성이 있다.
오늘날 기술문명이 발달은 우리 일상의 많은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있다. 예컨대, 일기 예보를 통해 어떤 옷을 입을지, 우산을 챙겨야 할지 말지를 확인할 수 있고, 버스가 언제쯤 올지 하염없이 기다렸던 과거와 달리 도착 예정 시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음식 하나를 배달시켜도 실시간 도착 정보를 제공하니 우리 일상에서 체감하는 불확실성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우리의 일상은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큰 삶의 맥락에서 불확실성을 완전히 걷어낼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 여정이다. 내일 당장 우리가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지 어떻게 알겠는가? 기술 문명이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 덕에 우리는 과거보다 좀 더 편안해졌을 수 있으나, 반대로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내성은 약해졌고, 그로 인해 조금의 불확실성도 견디지 못하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아닐까?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 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
90년대의 트로트 가수이자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주제가를 부른 김국환의 대표곡 중 하나인 '타타타'의 도입부 가사이다. 가사에서 드러나는 삶의 태도는 불확실성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래 가사와 같은 삶의 태도를 가질 때 분명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불확실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불확실성이 발생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특성 그 자체를 받아들임으로써, 불확실하다는 것이 확실함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노래 제목인 '타타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노랫말처럼 사람이든, 세상이든, 다 알 수 없는 한계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있을 때, 우리는 불확실성이라는 모험을 조금은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후에 나에게 벌어질 여러 가지 불확실한 일들을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렇게 되뇌어보자. ‘운명이여 오라 나 두려워 아니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