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성숙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고 해서 관계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도리어 관계를 풀어내는 말의 지혜가 부족한 채 무작정 관계의 갈등에 뛰어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동기가 옳다고 해서 과정과 방법의 모든 것이 다 용인될 수 없듯이, 관계의 갈등을 다루는 것에도 용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신혼 초 아내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이다.
늦은 저녁 지인으로부터 유명 브랜드의 빵을 선물 받았다. 선물 받고서 바로 먹고 싶기는 했으나 저녁도 그득하게 먹은 뒤라 다음 날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음 날 하필 늦잠을 자서 급히 출근하느라 빵을 맛보지 못하고 하루 일과를 보냈다. 퇴근길이 되어서야 집에 있을 빵 생각에 집으로 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집에 빵이 없었다. 당연히 있었어야 할 빵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 곳곳을 뒤져도 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빵의 행방을 물으려 아내를 쳐다보자 아내가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랬다. 아내가 빵을 다 먹은 것이었다.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아내에게 소리쳤다. “혼자 그거 다 먹었어? 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 돼지야!!!(절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ㅜㅜ)”
그날 밤 내가 사과를 받기는커녕 나는 아내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미안하다고, 당신 돼지 아니라고 말하면서...
관계의 갈등을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서 필요한 말하기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다. 감정이 격해질 때, 우리의 초점은 쉽게 상대방을 향하게 되고, 이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전달하기 쉬워진다. 내가 빵에 눈이 멀어 아내를 향해 돼지라고 불렀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동물과 결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감정이 격해져서 사실이 아닌 말을 하는 경우는 일상에서 참 많은데, 예를 들어 ‘너는 늘 약속을 어기잖아’라고 과장이나 일반화를 하게 되기도 하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며 상대를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말들은 사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상대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았겠지만, 항상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닐 것이며, 모든 영역에서 무능력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관계를 잘 다루기 위해 사실만을 전달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어떤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초점을 상대가 아닌 나에게 두는 말하기, 그것이 곧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상대가 약속을 어겨서, 상대가 내가 요청한 것을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상대가 나를 배려하지 않고 빵을 모두 먹어서 기분이 나쁠 때, 상대에 대해 무어라고 규정하지 말고, 내가 인식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내가 몹시 실망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하다'라고 말하는 것, 이런 말하기가 바로 우리가 흔히들 들어서 아는 ‘I-message’이다.
아내를 돼지라고 규정지으며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는 대신, ‘내가 얼마나 빵이 먹고 싶었는데, 당신이 빵을 다 먹어서 너무 화가 나고 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실망스럽다’라고 말하며 내가 인식한 상황과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해서 사실만을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도리어 내가 아내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사과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억하자. 관계의 갈등을 마주할 용기와 사실에 충실한 말의 지혜가 더해질 때, 불편한 관계를 조금씩 회복시켜 나갈 수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