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의 성숙
‘애들은 가라’
요즘 말로 핫한 카페와 식당에서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노키즈존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키즈존이 확산된 계기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일은 2011년 부산 어느 식당에서의 사고이다. 당시 식당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그릇을 들고 가던 종업원과 10세 어린이가 부딪히면서 어린이가 화상을 입게 된 사건인데, 이 일로 부산지방법원은 식당 종업원과 주인에게 4,1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로 인해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높은 책임 부담이 노키즈존 확산의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키즈존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UN 아동권리협약과 국내외의 인권 법규를 근거로 하여 노키즈존이 아동 차별이라고 여러 차례 판단을 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인권위의 판단이 곧 법적 구속력을 의미하지는 않기에 여전히 많은 장소에서 노키즈존은 운영되고 있다.
인권적 관점과 대중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한국 리서치가 23년 2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노키즈존에 대해 필요하다는 응답이 73%로 나온 것이다. 사업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처럼 압도적인 찬성 결과가 나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사업주의 입장을 공감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그렇다기보다 사람들과 사업주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업주들의 문제 발생을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와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하는 욕구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고 있는 공간에 말썽을 피우고, 소란스럽게 하는 아이들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사회적 규범을 잘 지키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아이들의 입장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단순히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동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시킬 우려가 있다. 나아가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향해서도 말이다.
사업주는 차치하고, 사람들은 왜 아동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왜 아동을 배제시키는 것에 기꺼이 찬성표를 던지는 것일까? 이에 대한 나의 답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들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유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 같은 곳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닌 자신들의 쉼을 누리는 치유적 의미의 공간이 되어 있다. 그렇기에 그 소중한 시간과 공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신은 돈까지 지불했는데 말이다. 이는 사람들이 그만큼 일상에서 쉼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아동을 비롯한 약자에 대한 수용성이 낮은 시대이다. 나 자신 하나 건사하기 쉽지 않은 경쟁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약자에 대한 높은 수용성을 발휘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돈이 많고 시간이 많으면 그런 수용성이 생길까? 우리의 초점은 환경의 변화가 아닌 나의 내면의 변화를 향해야 한다. 돈과 시간이 많아도 괴팍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있으나, 내면이 성숙한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을 어느 정도로 수용할 수 있는가? 그것이 곧 나의 내면의 성숙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