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성숙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안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체기관이 있다면 어디일까? 우리의 오감이 모두 안전을 대비하기 위한 기능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은 바로 ‘귀’인 듯하다.
어떤 이들은 시각 정보가 가장 직관적으로 위험을 파악할 수 있게 하기에 눈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눈보다 눈보다 귀가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귀는 쉬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은 어둠 속에서 기능이 제한되고, 또 수면 중에는 사실상 기능이 거의 멈추다시피 한다. 즉, 눈이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귀는 어떠한가? 눈은 잠들어도 귀는 잠들지 않는다. 눈은 우리의 의지를 따라 감거나 뜰 수 있지만, 귀는 열었다 닫았다 할 수는 없다. 즉, 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위험에 대비하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귀는 사람이 죽음에 이를 때, 가장 마지막까지 기능한다. 임종을 앞둔 가족들에게 의료인들이 사랑한다고 말해주라는 것은 단순히 위로의 차원만이 아니다. 2020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연구팀은 호스피스에 입원한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연구(Blundon et al., 2020)를 시행하였는데, 실제로 의식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뇌에서의 청각 처리 기능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처럼 우리의 귀가 잠시도 쉬지 않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예민하게 기능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바로 '안전'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훌륭한 귀의 기능으로 인해 도리어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입’ 때문이다. 입을 통해서 나오는 상대에 대한 거친 언어, 무시와 비난과 조롱의 말들은 상대방의 안전, 심리적 안전을 무너뜨린다. 안전을 확보해 주는 귀의 역할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입을 조심해야 한다. 성경에도 이러한 말씀이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잠 18:21)’. 죽고 사는 것이 혀, 그러니까 입에 달려있다고 한다. 말하는 나뿐만 아니라 듣는 상대방의 죽고 사는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귀가 나에게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만큼이나, 상대방의 귀에도 안전을 담보해 줄 수 있는 말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가? 그때, 한 번 더 멈춰서 생각해 보자. 이 말이 상대의 귀에 안전하게 들릴 수 있는 것인지.
출처: Blundon, E. G., Gallagher, R. E., & Ward, L. M. (2020). Electrophysiological evidence of preserved hearing at the end of life. Scientific reports, 10(1), 10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