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이 시대의 가장 능동적 활동

내면에서의 성숙

by 노샘

성장과 발전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자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멈추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대인의 삶은 도무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에는 마치 밤이 오면 모든 활동의 마침을 알리듯이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방송 시청의 경우에 지금처럼 채널이 다양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소수의 방송사를 통해 정해진 시간에만 방송 시청이 가능했다. 대개 자정이 지나면 전파 송출이 멈추고 더 이상의 방송 시청이 불가했다. 또 다른 예로 24시간 편의점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도 90년대 중반 이후였는데 그 이전에는 심야에서 무언가를 구매하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즉,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멈춤은 경험되었다. 지금의 우리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가벼운 일상적 사례뿐만 아니라 우리를 멈춰 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적어도 ‘죽음’ 앞에서는 멈추는 것이 당연하나, 오늘날은 죽음 앞에서조차 멈추지를 않는다. 가까운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가족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온전히 마주하며 애도하지 못하고, 생업을 비롯한 일상 활동들을 이어가곤 한다.



멈춤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우리 삶에 멈춤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은 우리를 멈출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내가 멈추려는 의지를 내어도 웬만해서는 멈추기가 쉽지 않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멈추어야 할 공간인 침대에서 조차도 우리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멈추지를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왜 멈추어야 할까? 멈추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 단지, 멈추지 않는 삶이 주는 피로감 때문은 아니다. 멈춤은 우리에게 여유를 주고, 여유는 사색을, 사색은 인간다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가는 우리가 멈춰 서게 되면, 옆도 보게 되고, 하늘도 보게 되고, 왔던 길도 뒤돌아 보는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런 여유 속에서 관찰하는 것들로 인해 과연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이렇게 나아가는 것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 사색의 기회가 된다. 그리고 그 사색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 궁극적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마주하도록 이끈다.



오늘날의 멈춤은 과거 외부환경에 의한 수동적인 멈춤과는 다르다. 스스로 의지를 내어도 좀처럼 멈추기가 쉽지 않기에 이 시대에서의 멈춤은 높은 능동성을 요구하는 활동이다. 끊임없이 달리기를 요구하는 시대에 멈춤이 도피가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선택이자 행동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제 멈춤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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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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