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의 성숙
러시아의 대문호인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사회의 문명 수준은 그 사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조금 더 확장하여 생각해 보면,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대우받고,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통해 곧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14년 2월 송파구 석촌동에서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을 기억하는가? 우리 사회에 큰 충격과 반향을 일으키며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던 사건으로 60대 어머니와 30대인 두 딸이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사건이다. 이들이 생의 마지막에 남기고 간 것은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이 든 봉투와 함께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힌 유서였다.
가난이 죄가 되어버린 시대에 이들은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이것이 더욱 서글퍼지는 이유는 온갖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며 부와 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안면몰수하여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데 반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은 더 큰 책임을 느낀다는 것이다.
1994년 Jost와 Banaji가 밝힌 시스템 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은 이러한 상황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사회구조에서의 원인을 찾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속한 사회구조와 질서, 즉 시스템이 불안정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때, 훨씬 더 큰 불안과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설사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시스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시스템 정당화 이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사회적 취약계층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를 더욱 지지하고 찬성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고 할 때에 그 도움이라는 것이 단순히 시혜적 차원에 머물거나 수동적으로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입장에 두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이 필요할까? 임파워먼트(empowerment), 즉,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구조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도록 돕고 이를 바탕으로 연대하여 집약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권한을 부여하는 그 첫걸음은 기초생활 보장에 대한 서비스를 도움을 받는다거나,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권리로 인식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난 5월에도 전북 익산의 한 모녀가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아직 갈 길이 참 멀다. 어떤 연유로 사회적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약자가 주체로 설 수 있는 사회,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바로 그런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