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말조개를 본 것은 어린 시절, 삼촌과 함께 찾은 시골 강가였다.
검은빛의 단단한 껍데기가 마치 돌 같아, 손끝으로 툭툭 쳐보곤 했다.
그때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그거 조개야. 근데 질겨서 못 먹는다.”
그 말은 흐지부지 흘러갔지만, 오랜 세월 뒤 다시 강물을 들여다보며 문득 이해했다.
사람들이 외면한 그 ‘질긴 생태의 한 조각’이 하천을 맑게 하는 힘이었음을.
‘말조개’라는 이름엔 익살도 묻어 있다.
‘말처럼 생긴 조개인가?’ 싶지만, 막상 보면 전혀 닮지 않은 토종 민물조개다.
‘말’은 옛말에서 ‘크다’를 뜻하는 접두사라 하니, 결국 ‘큰 조개’란 의미다.
이름이 주는 크기의 인상과 달리, 그 모습은 투박하고 껍질은 검다.
한때 우리의 하천과 강 모래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오염과 개발로 그 자리를 잃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지만,
말조개는 강 바닥에 몸을 묻은 채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왔다.
삶아도 질기고, 구워도 질긴 까닭에 밥상 위에서는 외면받았지만,
그 덕분일까. 말조개는 탁월한 정화자로, 눈에 띄지 않게 생태계의 흐름을 보살폈다.
그저 모래 속에 몸을 묻고, 탁함을 마시며 맑음을 내놓는 삶.
자신이 깨끗해지는 대신, 강이 깨끗해지도록.
질기다는 그 특성이 사실은 강을 정화하는 비밀이었다.
쓸모없다 여겼던 것들이 의외로,우리가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자연은 언제나 조용히 균형을 맞춘다.
눈에 띄지 않는 존재들이 흐름을 지키고,작은 힘들이 물길을 바꾼다.
흔히 표면으로 가치를 판단한다.
‘볼품없다’, ‘쓸모없다’는 기준으로 단정하지만,말조개처럼 겉껍질 너머의 본질을 모르고 지나친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말조개는 바로 그런 존재인 듯하다.
단단한 껍데기 속에서 강의 숨결이 이어지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의 순환을 돕는다.
보이지 않기에 더 고요하고, 고요하기에 더 깊다.
강가의 갈대와 그 밑에 숨은 곤충들,
도심의 이름 모를 잡초들도 마찬가지다.
겉으론 보잘것없어 보여도, 물을 정화하고 생명을 품으며
세상의 균형을 잇는다.
작고 미미한 존재 속에,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숨어 있다.
타인을 대하는 시선도 다르지 않다.
성급히 판단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지켜보고 이해하는 일.
그것이 세상을 한층 더 선명하게 바라보는 길일 것이다.
말없이 흐름을 맑히는 말조개처럼,
우리도 주변의 작은 존재 속에서
묵직한 의미와 맑음을 회복할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말조개가 강의 오염을 걸러내듯,
눈에 띄지 않는 생명들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지탱한다.”
질겨서 버려진 조개가 강을 맑게 하듯,
때로는 세상이 외면한 이들, 잊힌 가치가 세상을 살린다.
말조개처럼, 우리 마음에도 다시 정화의 기능이 깨어나길 바란다.
여전히 세상을 정화하려는 마음 하나가 맥동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직 맑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