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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조언, 스무 살에게

by 김 정

해가 바뀌는 시기는 늘 분주하다.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장 바쁜 이들은
수험을 끝내고 막 새 세상으로 건너가는 스무 살 언저리의 아이들인 듯하다.
그들에게는 처음으로 ‘내일’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해가 어른들에게는 계획의 시간이라면,
이 아이들에게는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배우는 시기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낯설어,
서툴게 마음을 다잡는 얼굴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부모는 기대를 숨기지 못하고,
기대에 닿지 못하는 순간엔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주변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언을 건네지만,
그 말 속엔 지나온 세월의 습관이 은근히 배어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멈춰서게 된다.
그 길을 지나, 또 그 다음의 숱한 길까지 걸어온 어른이 되었지만,
말 한마디 제대로 꺼낼 자신이 없다.


진로가 뚜렷한 아이에게는 길의 넓이를 말해주면 될지 몰라도,
목표가 흐릿한 아이에게는 말 한마디조차 날선 바람이 된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건넬 수 있을까.


한때 스무 살은 ‘청춘’이라 불렸다.
노래 속에서는 눈부셨고, 시 속에서는 남실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무 살 언저리는
희망보다 계획이 먼저이고,
꿈보다 증명해야 할 무언가를 먼저 요구받는다.


세상이 너무 빨라진 탓일까.
무엇을 선택해도 ‘조금 늦었다’는 말을 먼저 듣는 시대에 서 있다.
현실을 말하면 냉정한 어른이 되고,
희망을 말하면 현실을 모르는 어른이 된다.


조급함을 경계하라 하면 여유가 사치가 된 시대라며 웃는다.
천천히 가라 하면, 세상은 이미 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어른들의 말은 언제나 중심을 조금 비껴 나간다.
정답은 너무 많고, 동시에 없다.


어쩌면, 그 ‘정답 없음’이야말로 진짜의 정답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른 채로도 살아가야 하고,
그 모름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을 가볍게 말해서도,
무거운 짐으로 지우게 할 수도 없다.
빠른 인정은 쉽게 시들고, 늦게 맺힌 열매는 오래 남는다.
남의 시선에서 태어난 이름보다 홀로 서는 마음이 오래 견딘다.
이건 시대와 상관없는 오래된 진실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장 잘 지탱해주는 게 사람이다.


사람.


언제나 가장 어렵고, 가장 많은 것을 남긴다.
모두를 믿을 수는 없지만, 모두를 의심하며 살 수도 없다.
경계는 필요하지만, 그 경계가 상대를 밀어내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거리였으면 한다.


세상은 차갑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한 사람의 선한 눈빛이다.
나 역시 세상이 차갑다고 느꼈을 때,
계산 없는 손 한 번이 끝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삶을 살아본 시간이 많다고 해서
앞으로의 선택이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어른은 지나온 숫자가 무게가 되어,
빨라지는 세상의 내일을 헤아리기 버거울 때가 있다.
그래서 더 많이 머뭇거리고,
오래 살아도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 서성일 때가 있다.


그건 서툼이 아니라,
그만큼 삶이 복잡하고 변덕스럽다는 걸 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이 한 가지 말을 하고 싶다.


삶은 누구나 자기 속도로 흘러간다.
그러니 남과 비교하느라 조급해질 필요는 없다.
지금의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남보다 빨라야 한다는 건 세속이 요구하는 논리고,
내가 버틸 수 있는 속도가 내 삶의 논리다.


가만히 건네보는 이 마음이,
서툰 어른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조언이다.


잠시 어긋나더라도,
각자의 속도는 끝내 제 자리를 찾아간다.
말이 부족해도, 상황이 흔들려도
그 호흡이 마음에 오래 머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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