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삼역 사거리 유명가수

by 김 정

역삼역 사거리에는

가수 한 명이 있다.


무대 대신 화단이 있고,

환호 대신 소음이 있다.


처음 들은 건 누군가의 외침,

그러나 리듬이 있었다.


발라드에서 락으로, 장르는 바뀌지만

목소리만은 사람들을 향했다.


하늘색 배달 헬멧을 쓰고

자전거 옆에 앉아

스마트폰 가사를 따라 불렀다.


처음엔 조금 걱정이 됐다.

아픈 사람인가도 싶었다.

도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쉽게 불안해한다.


그런데, 한 번 더 봤고,

또 봤다.


며칠 뒤에도,

몇 달 뒤에도,

계절이 바뀐 뒤에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알아차린 듯했다.

쳐다보되 놀라지 않는 얼굴.

이미 이 거리의 일부가 된 존재.


어느 날,

그 하늘색 헬멧에 맞는 배달일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제서야 그의 하루가 보였다


낮에는 배달,

틈이 나면 노래.

그뿐이다.


겨울이 되었다.

역삼역 사거리 특유의 칼바람은

건물 사이를 파고든다.


아는 사람은 안다.

그 모진 바람을.


추위와 칼바람이 겹치면

보통 사람은 떠밀리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화단에 앉아

손을 비비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걸까.


아무도 박수치지 않고,

아무도 평가하지 않고,

아무도 기억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자리에서.


이 사람은 왜 이토록 성실할까.




유명과 무명


유명은

이름이 불리고,

사람이 몰리며,

증명 없이도 인정받는 상태다.


무명은 지나가는 단계라고 한다.

버텨야 할 시기,

설명해야 할 상태,

조금 부끄러운 현재.


하지만 무명일 때만 허락되는 시간이 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은 성실함,

쓸모없어 보이는 연습,

실패해도 아무도 실망하지 않는 안도.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은

이름이 없어도

자기 몫의 태도를 완성한다.

역삼역 사거리의 그 가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안심된다.


이 도시 어딘가,

아무도 보지 않아도

자기 몫의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사람이

살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름보다 역할이 앞서고,

성과보다 과정이 길어지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한다.


눈에 띄지 않고,

설명할 말도 많지 않지만

사람을 조용히 빚어가는 시간.


조용히,

남들이 보지 않는 자기만의 방향으로,

역삼역의 그 가수처럼.


세상에 유명이 넘쳐도,

내 눈길이 머무는 깊이에서,

그는 이미 나만의 유명인이다.


기록도, 증명도 필요 없다.

그저 살아 있는 태도와 묵묵함만으로 충분하다.







P.S.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언젠가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핑계 삼아 말을 건네보고 싶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만큼이나 깊은 그의 하루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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