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녘의 깊은 물이
끝내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흰머리 산의 육중한 바위가
먼지가 되어 흩어질 때까지.
상상조차 닿지 않는
그 소멸의 시간 속에서도
하나의 마음으로
변하지 않겠다는 선언.
앞산의 우직한 소나무가
철갑을 두른 듯 단단히 서 있는 것은
바람과 서리가
멈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피하지 않고 맞으면서도
빛을 잃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의.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끝까지 지키는 마음.
무식할 만큼
정직한 고집.
창공이 공활한 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닌,
그 안에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끝까지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애국가는 늘
정면으로 듣는 노래였다.
학교 운동장,
올림픽이나 월드컵 시작 전,
함성이 잦아들 때.
시선은 허공 어디쯤에 고정한 채,
관성처럼 노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동해의 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아가는
시간의 상상조차
굳이 하지 않은 채.
가사는 익숙했지만
의미는 늘 의식처럼 지나쳤다.
애국가,
국가라는 이름표를 떼어내면
남는 것은 하나.
지독하게 고집 센
사람의 태도.
나라에 대한 서약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 끝까지 붙들어야 할
지독한 태도.
불변하는 마음,
정면으로 맞서는 자세,
그리고 끝내
자신을 속이지 않는 고집.
애국가가 끝나고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
그 적막 속에서
내 기상의 높이도 드러난다.
묻어가려는 비겁함이
보편의 가면을 쓸 때,
그곳엔 기댈 전주도
숨을 후렴도 없다.
그러지 않겠다는 고집 하나가
명치에 걸린 채
끝내 물러서지 않는다.
애국가는
나를 향해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나를 세우는 문장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지켜내야 하는
내 삶의 태도.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내가 어떤 태도로 서 있는지,
P.S. 아침, TV 알람 오작동으로 뜻하지 않게 애국가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잠결에 몇 소절을 따라 불렀고, 이어진 뉴스의 이런저런 사건·사고 소식에 눈을 떴습니다.
이른 시간이라 잠결에 읊조렸던 그 구절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