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은 끝내 콩으로 불리지 않는다

이름 없는 혁신

by 김 정

콩.
이 작은 알갱이는
제 이름으로 불리는 법이 없다.
된장은 콩의 얼굴을 지웠고,
두부는 콩의 형체를 잊었다.
콩나물은 콩이었던 과거를 숨긴 채
접시 위에 누워 있다.


오래전부터,
콩은 사라지는 대신
다른 이름으로
되살아났다.


제 이름을 지워내는 대신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일에
익숙해진 것처럼.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좋아하던 된장국이
콩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구수하고 부드러운 국물 속에
그렇게 딱딱한 알갱이가
숨어 있었을 줄은 몰랐으니까.


그 어긋난 연결 앞에서
온전함은
때로 스스로의 형태를 버리는 일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느꼈다.


콩은 작고 딱딱해
그대로는 삼킬 수 없다.


물에 젖고,
시간을 견딘 뒤에야
쓰임을 얻는다.


국이 되고,
장이 되고,
기름이 된다.


이름을 바꿔가며
하루 세 번,
이름 없는 헌신이 식탁에 오른다.


콩을 마주하면서도
콩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 식사.


식탁 위의 침묵은
더 따뜻하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늘 콩이다.

된장국은 속을 덥히고,
콩기름은 반찬에 은은한 윤기를 더하며,
콩나물은 소박한 한 끼의 상을 완성한다.


없으면 바로 알게 되는 맛,
설명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맛.


그래서일까.
이토록 많은 변신과 일을 해낸 콩이
유독 콩나물로 발아해
접시에 누워 있는 걸 보면
괜스레 눈길이 머문다.


긴 시간 불려지고,
몸을 밀어 올린 끝에,
더는 설 곳이 없어
눕게 된 모습.


하루를 다 써버린 사람 같다.


지친 얼굴을 보면
숨죽인 콩나물 같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돌이켜보니 꽤 정확하다.
할 일은 다 했고,
맛은 충분히 남겼으며,
이름은 굳이
부르지 않아도 알아차리게 되는 모습.


쌀은 밥이 되어도 쌀이고,
밀은 빵으로 변해도 밀이다.
하지만 콩은 다르다.


된장, 두부, 콩나물.
형태도, 냄새도, 이름도
전부 바꾼다.


곡물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변신이 아니라,
오래된 혁신 방식에 가깝다.
크게 바꾸는 일이라기보다,
끝까지 버티며
모양을 달리하는 과정.


앞에 나서지 않고,
설명되지 않으면서도
없어질 수 없는 자리를 남기는 것.


이름 없이 남은 콩의 자리는
다른 이름으로 식탁 위에 머문다.


된장국의 따뜻한 김 속에서는
맛있게 먹으라 하는 인사가,
빈 그릇의 온기 속에서는
잘 먹었습니다라는 답이 남는다.


그 덕분에
밥상에는
깊은 맛에 온기가 더해진다.

이름 없는 수고를 숟가락에 담아,
일상의 허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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