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은 타인의 하루가 가장 가까이,
그러나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서로의 시선은 지나치지만,
아무도 머물지 않는다.
그 무심함은,
서로에게 잠시 물러서기 위한
도시의 숨 고르기일지도 모른다.
그 정적이 머문 곳,
객차 안에서
한 할머니의 마른 손짓이
고요를 흔든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빈자리를 가리키며
맞은편 남자를 부른다.
마흔 즈음으로 보이는 중년 직장인,
검은 백팩을 메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한 사람.
왜 그를 불렀는지
쉽게 짐작되지 않았다.
주변에는 학생도 있었고,
연배가 비슷한 이들도 있었지만
할머니의 시선은
오직 그 남자만을 향했다.
남자는 당황한 기색으로 이어폰을 빼고 손사래를 쳤다.
몇 번의 손짓이 오간 뒤,
정적이 다시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나는
남자의 등 뒤에 남아 있던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갔다.
손짓은,
처음 보는 이에게는 잘 건네지 않는
조심스러운 손길 같았다.
아마도 할머니는
백팩을 맨 남자의 뒷모습에서
하루의 무게를 얹은 아들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를 견디며
서 있거나 흔들렸을
어딘가의 아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너무 익숙한 뒷모습.
지나가는 군인을 보면서도,
머리칼이 희끗해진 이를 보면서도
제 자식의 얼굴을 포개어 보는
부모의 마음이 겹쳐졌다.
타인에게서
소중한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반사적 반응은
부모라는 이름이 가진
정서의 관성일까.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나는 다른 방향에서
같은 마음을 마주했다.
할머니가 타인에게서 자식을 떠올리듯,
나는 타인의 노년에서
부모의 시간을 겹쳐본다.
기우는 뒷모습마다
부모의 기척이 스쳐 간다.
어깨는 지그시 내려앉고,
허리는 말없이 세월을 받는다.
멈칫거리는 발걸음마다 숨이 짧게 꺾인다.
모르는 이에 대한 연민이 아닌,
이미 내 부모의 몸에 배어 있는
세월의 결을 읽게 되는
자식의 아릿함이다.
각기 달랐던 젊은 날의 생기는 마르고,
이제는 누구나 비슷한 노년의 얼굴로
물드는 것 같다.
닮음은 생김새 때문이 아닌,
삶을 견뎌낸 주름의 깊이,
고단함의 무늬가 서로에게 겹쳐진다.
낯선 노년의 눈빛 속,
아버지의 저문 시간 위로
어머니의 흔적이 스며든다.
그렇게
타인의 모습을 빌려
내 부모의 이름을
가만히 되뇌어본다.
할머니의 손짓은
세상 모든 자식의 고단함을 보듬는 온기였고,
그 순간 가슴에 번진 울림은
부모의 뒷모습을 읽어내는
자식의 응시였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누군가의 자식이 서 있고,
누군가의 부모가 앉아 있다.
서로를 모른 채 스쳐 지나가지만,
그 스침 속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모의 안부와
자식의 안부를
가만히 마음에 마주한다.
안부란,
곁에 없을 때 더 자주 떠오르는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