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by 김 정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말 오후,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고

머무르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어느 상가 옥상 빨랫줄에 걸린 천들이

바람을 타고 흔들리고 있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흔들리면서도

날아가지는 않았다.


줄 끝에 물린 작은 집게들 덕분이었다.

작은 것 하나가,

흩어질 수 있는 것들을 붙들고 있었다.


하루도 몇 개의 약속에 기대어 있는 듯했다.

흐르는 시간의 한 지점을 붙들어 두는 일쯤으로.

그러나 그 매듭이 언제나 견고하진 않다.


짧은 메시지 한 줄로,

정해 두었던 시간이 비워졌다.

그중 하나가 풀리자,

하루가 느슨해졌다.


계획에서 벗어난 발걸음이 종로로 흘러갔다.


한때 이곳은 약속이 모이던 자리였다.

위치를 공유할 수도 없던 시절,

시간과 장소만으로 서로를 찾아오던 곳.


지금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여행 가방을 끄는 외국인들,

자주 멈춰 서는 이들.


그 사이로,

이 거리 어딘가에 기억을 묻어둔 듯

발걸음보다 시선이 느린 이들이 있었다.


같은 자리, 다른 시간.


익선동 골목과 종로의 오래된 거리 사이,

그 경계쯤에서는 시간이 조금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빠르게 모여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고,

느리게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


설레서 기다리는 얼굴과

애써 기다리는 얼굴은

닮아 보이지만, 같지 않다.


약속이란,

묶는다는 뜻을 두 번 겹쳐 쓴다.

언제든 풀릴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한 번 더 묶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간도, 사람도, 관계도.


북촌에서 나고 자란 친구와 마주 앉았다.

한옥을 개조한 막걸리집,

기와지붕과 툇마루가 남아 있는 가게 너머로 종로 골목이 보였다.

개발이 비껴간 자리들은 여전히 예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풍경 사이에서, 잔이 먼저 채워졌다.


종로로 향했던 이날,

오랜 친구가 묶어 둔 하루였다.

비워진 자리 하나로

흘러가던 시간이 잠시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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