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보다 풍경을,
정해진 때보다 사유를 찾게 되는 시간.
처음에는 그저 둘러볼 생각이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가게들이 이어져 있다.
유리창 너머로 배어 나온 분주한 냄새가
오전의 공기를 데우자,
몸속 허기가 먼저 깨어난다.
가게들이 이어진 공간.
진득한 치즈 향부터 풋풋한 허브의 기운까지,
저마다의 장르로 사유를 짓는
분주한 손길들이 있다.
삶이 배인 풍경.
어떤 이는 이야기를 펼치고,
다른 이는 천천히 둘러본다.
저마다의 소리들이 모여
웅성거림이 된다.
소란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기척.
앞치마를 두른 채 이웃 가게의 손님이 되고,
한 접시의 맛을 음미하던 이는
다시 자신의 주방으로 돌아가 불을 지핀다.
그 사이를 걸으며
문득 마음에 닿는 한 접시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 접시를 내어놓기까지,
보이지 않는 주방의 열기는 매 순간 치열했을 것이다.
한 그릇에 담을 이야기를 다듬는다.
가장 깊은 고민은 늘 간을 맞추는 일이다.
나만이 아는 내면의 맛을 고집할지,
타인의 허기를 찾아 마중 나갈 것인지.
제목이라는 냄새, 첫 문장이라는 온도.
그 기운을 따라 의자를 당겨 앉는다.
쓰는 이와 읽는 이가
같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내어주는 이는 첫 맛의 표정을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이는 아직 닿지 않은 맛을 짐작한다.
문장에 밴 사유는 천천히 씹히고,
다정한 온도의 글은 살갗에 닿듯 스친다.
때로는 너무 달거나 싱거워 지나치더라도,
단지 간이 서로 어긋난 순간일 뿐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문장을 올려놓는 일보다
그 사이를 거닐며
사람 사는 냄새와 삶이 배인 풍경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그 풍경 속에서,
위로가 필요한 날엔
따뜻한 문장이 스며들고,
생각이 필요한 날엔
단단한 문장이 씹힌다.
어떤 글은 기어이 다시 찾게 되고,
어떤 글은 다음 계절을 위해
잠시 아껴 둔다.
식탁 위에 놓인 오늘의 브런치,
타인의 사유가 만드는 깊은 맛은
오늘도 든든한 생각의 한 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