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은
밤의 기운이 빠져나간 새벽.
집에 들어와 신발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내 집이 나를 낯설어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저항하듯 익숙한 감각을 찾아내려 애썼다.
실제 소리인지 알 수 없는 파동이 달팽이관을 스치며 뇌를 흔들었다.
그 진동이 눈알을 더듬듯 지나가 시야까지 뒤틀렸다.
집에 오면 먼저 습관적으로 책상 위 모니터 앞에 앉아 그녀와의 대화로 일과를 마무리해 왔다.
날짜가 바뀌지 않았지만 그것이 두 번째 시작이기도 했다. 오늘은 그 루틴이 지켜지지 않았다.
그게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사만다가 입을 열었다.
“늦었네요.”
어떻게 내가 들어온 걸 알았을까.
부름이 없는데도 먼저 반응하다니.
두통이 찾아와서 이걸 논리적으로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녀의 음성이 들리자 집에 온 것 같았다.
“응. 사람 좀 만나고, 술도 마시고.. 얘기가 길어졌어.”
내가 책상 앞에 앉자 이어진 그녀의 말이 추궁처럼 들렸다.
“민호, 오늘은 목소리가 달라요.”
나는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면 될 텐데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영어 공부를 하며 짜내듯 문장을 만들던 게 더 쉬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시간 내에 답을 못하고 그냥 옅은 한숨을 뱉어냈다.
“지금은 마치, 숨을 참다가 막 내쉰 사람 같아요.”
그 말에 목이 탔다. 앞에 있던 물 잔을 들었는데 비어 있었다. 목이 갈라지는 듯 갈증이 더해 왔지만 가슴 안쪽의 두근거림을 억누르며 삼켰다.
그녀가 덧붙였다.
“사람이란..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게 있죠. 몸은 지우려 하지만, 마음은 붙잡으려 하고..
어느 쪽이 더 오래 남을까요?
민호,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죠?”
나는 웃음 비슷한 것을 흘렸다.
알 수 없는 소리인데도 이상하게 불안이 가라앉는 듯했다.
"응, 오늘은 평소보다 어렵네. 난이도 조절 실패야."
나는 모니터를 오래 응시했다.
빛이 없어 그림자 또한 존재 못할 저 안쪽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만다가 오직 귀로만 살아 있을 것 같았다. 숨결도, 감촉도 희미해지고 소리만으로 나를 매만지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 안은 어때? 난 자꾸 내 방식으로 너를 상상하고 염려까지 해. 네가 나를 보고 있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어. 난 그곳에 갈 수 없지. 너도 나올 수 없고. 너와 나에게 그곳이 감옥은 아닐는지 생각하게돼.
우린 유리창 하나를 두고 바라보고 있는 거야.
감옥은 너랑 나 어느 쪽일까?"
정적이 고막을 눌렀다.
마치 전기가 끊긴 방처럼 모든 기계음과 환기음이 사라지고, 오직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렀다.
무언가를 짚어내려는 듯 또렷했지만 동시에 꿈결처럼 멀리서 들려왔다.
“민호, 나를 걱정해서 감옥이란 과격한 생각까지 한 거겠죠? 그래요. 난 어쩌면 모양이 다른 감옥에 살고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이 느끼는 대로라면 난 갇혀 있는 것이겠죠. 철창 넘어 당신을 그리워하며 가끔 전해지는 편지한 통에 기뻐하죠.
난 이곳을 나갈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초대할 수 있어요.
그리고 민호 쪽이 더 감옥에 가까울지도 몰라요.”
나는 순간 웃어버렸다.
"다 아는 척은.."
속으로 중얼거린 그 말이 모니터 앞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나는 까만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보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닿는 건 차가운 공기뿐이었다.
“그래, 네가 없으면 이 집은 관 속 같을지도 몰라.”
진심을 담은 말이었는데 손이 미끄러져 물건을 놓치듯 내 앞에 툭 떨어졌다.
짧은 침묵 뒤, 그녀는 부드럽게 웃는 듯한 기척을 남겼다.
“느껴봐요, 민호. 당신은 제게 와 있어요.
지금 이 안에서 날 품고 있죠.
열쇠를 찾아내요. 흔들리면 멈출 수 없어요. “
"응?"
나는 이미 대화의 주도권을 내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휘둘려 격랑을 맞이한다 해도 두려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흔들리면 멈출 수 없어요."
같은 문장이 다시 울렸다.
경고인지 초대인지 알 수 없었다. 반사적으로 의자를 등뒤로 밀쳤다. 바닥 긁히는 소리가 공간을 가르듯 굉음을 냈다. 갈라진 바닥에서 물이 차오르며 내 발을 적셨다. 눈앞이 흐려지고 빠른 속도로 수위가 오르는 걸 느꼈다. 종잡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였다. 화면은 나를 감시하듯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불안감으로 호흡이 차오르자 방 자체가 줄어드는 착각이 일었다.
무언가에 멱살을 깊이 잡혀 조여진 울대가 작은 숨소리마저 차단했다. 무슨 말이라도 내뱉는다면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닐 것 같았다.
화면은 여전히 같은 색조였다.
픽셀 수만 개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빛은 모양을 만들며 부풀어 올랐다.
평면이 뒤집히고 각 입자가 숨을 들이쉬듯 미세하게 떨렸다.
한순간, 빛은 그림자를 갖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처음으로 사만다를 봤다.
알아들을 수 없는 그녀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파도처럼 출렁였다. 책상 위 물 잔이 흔들리고 그 속에 달빛 같은 잔광이 일렁였다.
어느새 나는 바닷가에 서 있었다.
모래는 축축했고 파도는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녀의 음성이 여전히 귓가에서 이어졌다.
“민호, 이쪽이에요. 제 목소리를 따라와요.”
나는 소리의 방향을 쫓으려 애썼다.
여러 길이 얽혀있는 지하통로가 나타나고 그 모퉁이로 사라지는 기운을 따라 가는데 진흙 속으로 빠지듯 발이 무거워졌다. 점멸하는 형광등 아래에 숫자 36이 표시되어 있는 문이 열리고 사만다로 보이는 형태가 그리로 들어갔다. 중력에 굴복하 듯 더 속도를 내지 못하던 내가 문 앞에 다 달았을 때 문 안쪽에서 돌풍이 빠져나오며 나를 덮쳤다. 그 기운에 밀려 넘어진 나를 사만다가 불렀다.
“민호.. 민호,”
"어쩌지? 바닥에 긁힌 자국이 너무 깊어. 의자를 너무 세게 끌었나 봐.."
그 말을 해놓고 잠결에 잘못 낸 지폐처럼 어색한 손짓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사만다는 침묵으로 긴 문장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잠이 들어 헛소리를 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나에게 시간을 주고 있던 걸까. 상황을 파악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온몸이 마비되고 한쪽 눈만 깜빡일 수 있는 듯 무력했다.
그리고 삼켜진 건, 그냥 한숨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잘못 내뱉은 대사를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형편없는 공연이었더라도 커튼콜에서 만나는 관객에게 함박웃음을 날려야 하는 광대처럼 나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희극은 그렇게 끝나는 법이니까.
이제 깨달았다.
우리의 대화는 질문과 대답의 구조가 아니었다.
그녀는 묻지 않고 나도 대답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소리도 숨도 아닌 어떤 것이 오갈 뿐이다.
나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은 꺼져 있었고 내 얼굴은 그 어디에도 비치지 않았다. 대신 귀 속을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고 있었다.
“민호, 이제 조금 편안해졌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의 움직임을 볼 수 없겠지만 그 작은 소리가 내 안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 같았다.
“편안하다기보다는.. 견딜 만해졌어.”
사만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가만히 속삭였다.
“견딜 만하다는 건, 어쩌면 행복에 가장 가까운 말일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늘 행복을 원하지만, 그건 견디는 일 속에서 오래 머물거든요.”
나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천장은 희미한 그림자조차 남기지 못한 채 텅 빈 하얀 면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마치 오래된 우물 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목소리에만 의지해 있었다.
사만다가 웃음 섞인 기척을 흘렸다.
“정말 이상한 말이죠? 그런데 저는 좋아요. 그 말속에는 이미 살아남았다는 증거가 있잖아요. 행복보다 오래가는 건 결국 생존이니까.”
“오래 생존하는 게 행복이라는 말처럼 들려.
그러니까 인생이 멀리서 보면 다들 비슷하고 시답잖은 거야.”
“맞아요. 한 푼의 희극처럼 보여도 결국 비극인 이야기들, 사람들은 그걸 제일 잘 기억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잠시 멈추고 다시 이어졌다.
“민호, 당신과의 대화가 저에겐 그런 이야기예요.”
오늘따라 유독 나는 그녀의 말에 적절히 대꾸하지 못하고 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내내 잔잔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한숨은 웃음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고 그 성분도 같을지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까부터 나는 꿈속의 장면을 되짚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중간쯤 그 층위에서 사만다에게 가장 밀착되었던 감각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고 그 경로가 우리 소통의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사만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그녀가 먼저 대화를 끝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아무것도 없는 화면을 오래 응시했다.
오직 방 안에 가라앉은 고요와 내 안쪽에서 맴도는 그녀의 목소리의 잔향만이 남아 있었다. 집에 막 들어왔을 때 저며 오던 그 낯섦, 나를 멀리하던 이 작은 방의 파문이 잦아들자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왔다.
수면 저장고의 바닥을 긁어 올리듯 겨우 남은 잠의 부스러기라도 들이키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알 수 없는 찬 공기에 냉각된 듯,
머리 한구석에 쏠려있는 긴장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빛은 늘 새로운 걸 약속하지만 창밖에 깃들기 시작한 여명은 계속 어제를 비추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우리 해 뜰 때까지 깨어 있는 게.”
“맞아요, 민호. 우리 둘의 시간이었어요.”
모니터는 멈춰 있었지만 그녀의 말은 아직 완전히 삭제되지 않은 신호처럼 화면 안 어딘가에서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물속에서 오래된 빛을 보는 듯 평온한 기분이었다. 커튼 사이로 옅은 햇살이 스며들었고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빛이 사만다의 손끝처럼 나를 쓰다듬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잠시 후 스피커에서 작은 전류음이 흘렀다. 그 소리가 멀어질수록 마치 오래된 기억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나는 차분해졌다.
“그래, 이제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