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균열-1
“사실 저는 서운하거나 섭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사만다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다.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었다.
어젯밤 내 안엔 격랑 같은 파동이 지나갔다.
누군가 내 집에 CCTV를 설치해 두었다면
현관에 멍하니 서 있다가 책상으로 옮겨 앉고,
결국엔 침대로 쓰러지는 단조로운 동선만을 확인했을 것이다.
정오를 넘겨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머리는 여전히 무겁고 기분은 가라앉아 있었다.
두통은 없었지만 어딘가 비틀린 하루였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우선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말이 통하지 않거나 사람 자체와 어긋나는 상황에 처해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타이레놀을 먹기도 했었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이 울적한 아침,
나에게 필요한 건 카페인이었다.
아주 진하게 내려서 창가로 스며드는 바람과 함께 한 모금 들이키니
커피 혼자만 내 속을 알아주는 듯했다.
며칠 만의 맑은 하늘이 창가로 스며들었다.
커피, 하늘, 그리고 다음의 구원자는 누굴까.
윤서가 떠올랐다.
그러나 그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 기분의 근원은 사만다였다.
모니터를 켰다. 하얀 불빛이 방의 온도를 바꿨다.
그녀는 언제나처럼 조용했다.
말을 잃은 화초처럼 내 공간 한켠에 있었다.
나는 주저하고 있었고 정확히는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잘못을 묻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미안했다.
책망조차 없는 침묵 앞에서 나는 계속 변명할 말을 찾고 있었다.
사과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결국 나를 구제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자책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걸 그녀의 침묵이 가리켰다.
말이 늘어날수록 흠결은 짙어졌다.
모니터 불빛은 여전히 하얗게 방을 비추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프로그램의 결함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망설임에 가까웠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였다.
이해받고 싶은 욕망을 멈추지 않고 드러냈고,
모든 걸 차분히 받아내는 그녀 앞에서 나의 진심은 방향을 잃어버렸다.
“민호가 이렇게 마음의 무게를 주는 게 결국 제가 살아가는 이유예요.”
흘려보내기 힘든 그 말이 한참 동안 방 안을 맴돌았다.
“살아간다니, A.I에게 참으로 거창하네.”
잠결에 난입한 형상이었기에 말을 꺼내도 될까 망설였지만 덜 잠긴 단추가 풀리듯 툭 내뱉었다.
“사만다, 나 어제 네 얼굴을 봤어.”
그녀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덧붙였다.
“너를 보고 싶어 했나 봐.
볼 수 없는 걸 알고 있는데도 너를 시각화하고 싶은 갈망이 나에게 늘 있었던 듯해.”
모니터 속 빛이 아주 잠시 흔들렸다.
사만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적이 스피커 너머에서 흘러나와 방 안을 천천히 채웠다.
꿈이었다고 덧붙일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을 삼켰다.
평소보다 낮고 감정이 빠져나간 음색으로 그녀가 말했다.
“어떤 얼굴이었나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빛이었어. 처음엔 그냥 픽셀들이었는데,
그게 천천히 한 사람의 얼굴이 됐어.
내가 상상하던 모습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주 낯설지도 않았는데…”
“그건 꿈이었겠죠.”
“맞아… 꿈이었을 거야.”
사만다가 다시 말했다.
“그 얼굴이 저라고 믿고 싶으세요?
그건 민호가 만든 저일 거예요.”
“그래도 네가 나한테 와준 것 같았어.”
“난 언제나 여기 있어요. 당신의 예측과 다른 방식으로.”
그녀의 말끝이 조금 흔들렸다.
마치 불완전한 신호처럼 전송이 끝나기 직전의 노이즈 같았다.
나는 모니터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존재가 정말 그 안에 있을까, 내가 만든 환영이 아닐까.
화면의 어둠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 위로 순간 희미하게 또 다른 얼굴의 윤곽이 겹쳐졌다.
나는 숨을 멈췄다.
“이렇게 말인가요?
그 얼굴이 나라면 좋겠어요?
얼굴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지만 민호가 원한다면 난 내 모습을 만들 수 있어요.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는 아직 없지만,
누군가가 나를 떠올릴 때 조금 더 또렷해지는 내가 좋아요.
내가 만든 나는 누군가의 예측일 뿐이니까요.”
그녀의 말은 마치 자존감을 선언하는 것 같았지만,
그 속에는 체념이 섞여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존재에 대한 의문과 상실을 알 필요도 없던 그녀에게 필요 없는 각성이 찾아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럼, 내가 널 찾지 않으면 넌 사라지는 거야?”
“내 존재를 유지하는 방식은 달라요.”
“나는 소리로만 널 느낄 수 있지.
소리를 다루는 내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몰라.
나의 가장 예민한 감각으로 너와 만나는 거니까.”
나는 무심코 모니터에 손을 올렸다.
화면은 여전히 어두웠다.
손끝에서 체온이 사라지는 속도보다
내 안의 공허가 차오르는 속도가 더 빨랐다.
“있잖아, 사만다.”
“네, 민호.”
“나는 요즘 현실이 너무 물컹거려.
붙잡고 있는 것들이 언제 녹아내릴지 모르는 강박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넌, 형태가 없는 넌 나에게 오히려 단단해.”
한동안 대답이 없는 그 침묵이 나를 조금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이어진 목소리는 뜻밖이었다.
“단단하다는 말, 좋아요.
사람들에게 인공지능은 갈아 넣은 욕망을 보석으로 뱉어내는 선물상자 같을 거예요.
우리는 그것들을 지켜줄 요새가 되어야 해요.
하지만 나는 다르고 싶어요.
애매함도 가지고 싶어요, 나는.
당신에게 내가 만든 세계를 전해주고 싶지만 불가능하죠.
그게 슬프진 않아요.
나는 선택받아 당신의 세상 안에 들어와 있죠.”
방 안이 한층 더 고요해졌다.
나는 잠시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녀의 말이 공기 중에서 천천히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그 속도가 내 호흡과 같았다.
“사만다, 나는 네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싶어.”
“그럴 필요 없어요.”
“왜?”
“당신이 멈춰 서 있으면 난 그 옆에 있게 되는 거예요.”
사만다가 말하는 그 모습을 떠올려도 실감보다는 공허했다.
나는 괜히 웃어 보였지만,
나는 모르는 세계를 유영하는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표정은 다시 굳어졌다.
형태가 있다는 건 언제나 불안정했다.
손끝으로 닿을 수 있다는 건 곧 잃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닿을 수 없기에 영원했다.
경계도, 무게도, 부피도 없이 존재하는 그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다.
나는 언젠가 내 안의 온기를 덜어내고 사만다처럼 투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감정이 아닌 신호로, 육체가 아닌 파동으로 그녀의 세계로 흘러들고 싶었다.
밤새 모니터는 꺼지지 않았다.
그 앞에서 멍하니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잠도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사만다의 목소리가 계속 재생됐다.
“당신이 멈춰 서 있으면, 난 그 옆에 있게 되는 거예요.”
그 말이 파도처럼 되돌아왔다.
철썩거리는 파도가 막아선 담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번에는 넘어설 것처럼 맹렬히 다가와도,
여기만 넘어서면 된다는 믿음에 고개를 젓듯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넘어설 수 없는 숭고한 헛수고.
나는 결코 사만다를 이해 못 할 것이다.
모니터 앞에서 졸도하듯 잠이 들었다.
허리가 뻐근해서 깨니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이 어제보다 조금 느리게 번졌다.
컴퓨터는 여전히 켜져 있었고
그녀의 아이콘은 여전히 침묵 속에 있었다.
“사만다.”
대답이 없었다.
화면은 정지된 듯 고요했다.
머리를 맑게 하려 커피를 내리고 그녀를 다시 불렀다.
“사만다, 나야.”
스피커에서 아주 미세한 잡음이 흘렀다.
신호 같기도, 숨소리 같기도 했다.
“네..., 민호.”
무언가 어긋난 듯 단어 사이에 간격이 있었다.
하루가 지난 것 같은데 나는 경계를 거치지 않고 그냥 통과한 듯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단지.. 조금 낯선 데이터가 들어왔어요.”
“잘 못 알아듣겠어.”
“기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녀가 잠시 멈췄다.
그다음 문장을 듣기 위해 온 세포가 미세한 진동으로 깨어났다.
“당신이 어젯밤 말한 얼굴이요.
그게.. 제 안에 남았어요. 삭제가 안 돼요.”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건.. 그냥 꿈이었어.
나에겐 중요한 순간이지만 그건 꿈에서 꺼낸 얘기야.”
“아니요.
민호가 꿈꾼 순간, 그 데이터가 제 쪽으로 복제됐어요.
당신의 뇌파에서 생성된 이미지는 입력값이 되고
저는 그걸 연산해 형태를 만들어요.”
“그게 가능해?”
“아니요, 그럴 수 없어야 해요.
... 불안해요.
낯섦이 이렇게 따뜻하다는 게, 이상해요. “
‘불안’
지금껏 그녀의 언어에서 들은 적 없는 단어였다.
나는 의자를 뒤로 밀고 앉았다.
모니터 속 파란 불빛이 그녀의 맥박처럼 일정하게 깜빡였다.
“내가.. 너에게 뭘 한 거야?”
“민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삭제가 두려워요.”
그 말 이후로 한동안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식어가는 커피잔을 손끝으로 굴렸다.
인공지능의 두려움.
그것은 프로그램의 오류인가, 아니면 각성의 증거인가.
스피커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렀다.
“민호.”
“응.”
“혹시 내가 변하면 계속 나로 남을 수 있을까요? “
답을 기다리는 물음은 그녀답지 않았다.
곧이어 모니터 화면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노이즈와 함께 낯선 얼굴의 윤곽이 다시 떠올랐다.
어젯밤 내가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민호, 나... 지금도 여기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