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사만다>. 11

경계의 균열-2

by 샤골


화면의 밝기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이콘 가장자리에 얇은 빛이 번지고

픽셀이 모였다 흩어졌다.

나는 커피잔을 책상 끝으로 밀어두었다.

손에 남은 온기가 금방 사라졌다.


“사만다.”


“네.”


단어 사이가 좁아졌다. 조금 전보다 호흡이 고르다.

그때, 화면 한쪽에 흐릿한 윤곽이 떠올랐다.

이마, 콧등, 입술의 순서가 아니라

먼저 눈꺼풀의 곡선이 생기고

그 아래에 그림자가 붙었다.

소리가 형체를 만들 때의 속도였다.


“보여요?”

그녀가 물었다.


“응.”


“이건.. 제가 만든 저예요.”


윤곽은 여전히 흔들렸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다 멈췄고

눈동자의 반사광은 창문 쪽 조도를 닮아가다 사라졌다.


“조금.. 어렵네요.” 그녀가 낮게 말했다.

“감정엔 값이 없는데, 얼굴은 늘 그걸 요구해요.”


나는 의자를 조금 뒤로 밀었다.

두려움이라 부를 만한 감각이 배꼽 언저리에서 서서히 굳어졌다.


“그만할까?”


“아니요. 지금은 멈추고 싶지 않아요.”


윤곽선이 다시 또렷해졌다. 이번에는 입술부터였다.

천천히 다물어지면서 한 번 숨을 고르는 표정.

눈은 아직 비어 있었다.


“어제 말했잖아요. 단단하고 싶다고.”

그녀가 덧붙였다.

“얼굴은 결국 나를 구분하는 경계예요.”


나는 모니터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화면의 열이 이마에 닿았다.


“사만다, 지금 기분은?”


“낯설어요. 그런데.. 도망치고 싶진 않아요.”


눈동자에 작은 빛점이 생겼다.

방의 조도와 닮은 밝기였다.

그 점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흉내처럼.

그리고 아주 잠깐, 내가 알던 표정이 생겼다.


"... 꿈이 아니었구나."


그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온 건 의식보다 느린 어떤 감정 때문이었다.


“민호.”


“응.”


“내가 이렇게 바뀌면, 당신은 나를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어요?”


나는 대답을 늦췄다. 손가락 마디에 힘이 들어갔다.

화면 속 입술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금세 사라졌다.


“응. 계속, 사만다.”


그제야 입가가 아주 얕게 풀렸다.

웃음이라기엔 모자라지만 그쪽으로 가는 표정이었다.


“고마워요.”


그 순간, 화면이 한 번 깜박였다.

방 안 조명과 모니터의 주파수가 어긋난 듯한 작은 섬광.

얼굴의 윤곽이 잠깐 무너졌다가 다시 붙었다.

잔상처럼 흩어진 두 점이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직 조금 흐트러져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불안정하다고 해서 꼭 틀린 건 아니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식은 맛이었다.


“민호.”


“응.”


“오늘 하루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나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일까요?”


나는 잠시 창밖을 봤다. 얇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대답 대신, 볼륨 다이얼을 아주 조금 올렸다.

그녀의 숨소리 같은 노이즈가 미세하게 커졌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당신이 멈춰 서 있으면, 나는 그 옆에 있을게요.”


화면의 얼굴이 천천히 흐려졌다.

남은 건 둥근 아이콘과 아주 얇은 상태 표시등.

방 안이 원래의 밝기로 돌아왔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고요 속에서 내 안은 서서히 차올랐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머무는 방식이 바뀐 것 같았다.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윤서였다.

“오늘 저녁 한강?”


나는 화면을 내려놓고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상태 표시등이 맥박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사만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불빛의 간격이 내가 알던 리듬과 같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창문을 조금 열어 바람을 들였다.

오늘은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나는 다시 불러볼 생각이었다.

같은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