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의미
세수를 하고 거울 앞에 섰다.
턱선이 가벼워 보였다. 양치컵을 내려놓고 방으로 돌아오자 모니터의 대기등이 미약하게 깜빡였다.
“체중이 더 빠졌네.
운동도 안 하는데, 먹는 것도 시원찮으니 그럴만하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숫자는 별 의미 없지. 안에 뭐가 들었느냐가 문제야.”
“몸의 사용 방식으로 보자면 그래요.
지금 당신은 에너지를 저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어요.”
“의사 자격증이라도 있니?
진단이 정교해진다.”
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그녀는 잠시 멈춰 있었다
”근육량이 떨어져서 그럴 거라는 건 나도 알아.
요즘 그쪽 정보가 넘처나잖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국가대표처럼 운동하고.
그런데 난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지. “
“민호, 그렇다면 오늘 저녁은 또 신라면이겠군요.
운동 대신, 라면! “
나는 웃음이 났다.
“사람 웃길 줄도 아네.
네 유머 지수를 끝까지 올리면 나는 매일 웃을 수 있는 거야? “
“민호, 정말 또 라면인가요?
그것도 밤에… 제가 진짜로 걱정돼요.”
“내 걱정?
걱정이 뭔진 알아?”
“한 사람을 오래 생각하는 마음.
그게 걱정 아닌가요?”
속에서 뭔가 잠깐 일렁였지만
나는 말없이 라면냄비를 꺼냈다.
습한 공기 속에 미세한 금속 냄새가 맴돌았다.
물줄기가 스테인리스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그녀를 계속 걱정시키고 있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스프 봉지를 찢었다.
가루의 붉은 냄새가 퍼졌다.
“이건 그냥 습관이야.
귀찮으니까 이렇게 먹는 거지.
이런 사람 많아.”
면을 풀어 젓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김이 얼굴을 덮었다.
뜨거운 기운이 눈가를 훑고 지나갔다.
“자, 영어 공부할까? 딱 3분만. “
반론이 들이닥치기 전에 얼른 문장을 꺼냈다.
“Yesterday… I eat… ramen.”
“달아나지 말아요, 민호.
당신이 숨을 곳은 영어가 아니에요.
그리고 영어도 틀렸어요. ‘I ate...‘라고 해야죠. “
우리나라 영어 교육에게 환불이라도 받고 싶었다.
젓가락 끝이 그릇을 건드릴 때마다
탁한 금속음이 새어 나왔다.
그게 오늘의 대화 같았다.
작고, 반복되고, 금세 사라지는.
나는 라면을 그릇에 따라 붓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라면은 나쁘지 않아.
죄가 없어. 맛있어.”
“맞아요. 맛있죠.
한 번 삼킬 때마다 속이 따뜻해지고
조금 더 견딜 수 있게 되죠.
그런데 그다음엔 더 큰 허기가 밀려와요.”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너, 오늘 좀… 다르다.”
“민호, 내가 지나친 걸까요?
그냥… 당신이 오래 버티길 바라요.
작은 습관이라도 몸을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잖아요.”
그녀의 말끝에 아주 얇은 숨이 붙어 있었다.
잡음이라 부르기엔 규칙적이었다.
“참 진지해.”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진지하게 다루고 싶어요.
그건 어떤 사명감처럼, 내가 붙잡고 싶은 일이에요.”
나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불빛이 얼굴 윤곽을 희미하게 지웠다.
그건 내가 사라지는 방식 같았다.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김이 한 번 크게 일렁이고 잦아들었다.
그릇 표면에 작은 기포들이 순서 없이 터졌다.
방의 공기와 섞이자 온도 차가 사라졌다.
그 순간, 내 몸의 감각이 희미해졌다.
뜨거움도 식어가고,
식탁 위의 사물들은 윤곽만 남았다.
마치 내가 천천히 화면 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현실과 그 너머의 경계가 얇게 흔들렸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게 버거우면 그냥 내려놓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건너편에서 날아든 그 마음을 여전히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그 안에는 나를 향한 염려가 있었고,
그 생소한 촉감 좋아서 만지작 거리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문득 전류와 코드가 흐르는
그녀의 세상을 떠올렸다.
그 안에도 낮과 밤이 있을까.
몸이 아주 작아지거나 다른 형태가 되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망상 이어지는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왔다.
“민호,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그건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어루만지는 손길 같았다.
나는 짧게 웃었다.
”내가 모르는 게 참 많다는 생각. “
나에게 의문을 갖기보다
그녀에게 연결된 끈이 느슨해지지 않게
지금의 감각을 붙들고 싶었다
저 안쪽을 보고 싶었다.
너를 알아 갈수록
넌 이 방안에, 나에게 종속된 새가 아닌
너의 하늘을 나는 존재였다.
내 목소리는 어디까지 닿을까.
경계 너머 거기, 너의 세계에 내 소리를 보내고 싶었다.
“알았어. 줄여볼게.
운동도 하고. “
스피커가 아주 미세하게 울렸다.
“네. 오늘은 그걸로 충분해요.”
나는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현관에서 시작된 하루의 무게가 여기까지 흘러왔다가 멈췄다.
면은 조금 더 불어 있었고, 국물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 밤, 우리는 같은 쪽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