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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OVICH Jan 08. 2021

그대들의 인생작

츠네오는 조제를 떠났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의 범람 속에 되찾은 쓸쓸히 빛나는 재탕


입을 게 없는데 버릴 것도 없는 애증의 내 옷장처럼 선택과 집중을 대신해줄 A.I를 고용하고플 만큼 넷플릭스는 방대하다

공룡 <넷플릭스> 덕분에 접근성은 수직 상승했지만 밀착된 그 거리만큼 초점은 흐려지고 결정력도 무뎌졌다
볼게 너무 많아 뭘 볼지 모르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인데.

그럼에도 , 애증의 <넷플릭스> 덕분에 그녀 '조제'를 다시 만났다


한동안 너무 많이 봐서 내가 츠네오인 양 자책감마저 드는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한 소회를 영혼까지 쏟아내 적어보고 싶었지만 그것 역시 수많은 클리셰에 뒤덮여 재탕으로 치부될 바 분명하다 싶어 서랍 속에 넣어 둔 , 그래도 자꾸 보고 싶고 토론하고 싶고 울고 싶어 지는 나의 '조제'를 나직이 불러본다


왜 우리는 조제를 보내주지 못하고 질척이는 것일까
걷지도 못하는 가녀린 그녀에게서 왜 도망치지 못할까

츠네오는 조제를 떠났지만 우리는 거기에 남아 조제를 바라본다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조제가 살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다

떠나간 츠네오를 모질다 손가락질할 수 없다는 걸 세상 좀 살아본 우리라면 알고 있다

홀로 남겨진 조제가 가엽고 초라하지 않길 소원할 뿐이다


유모차인지 카트인지 알 수 없는 탈 것에 휘감긴 담요 속에서 커다란 식칼을 들고 경계와 불안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나타난 조제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쪽방에서 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다

또렷한 말투와 눈빛으로 장애에 갇혀 있지 않은 그녀는 그 소박한 공간에서 더 빛나 보인다

몸의 장애는 내면의 굴곡으로 이어 지고 그 연약한 기초 위에 세워진 관계는 유한할 것이 분명하지만 조제는 츠네오와의 그 시절을 용감하게 사랑으로 채워갔다


결국 보통의 연애처럼 무뎌지고 생기를 잃어가는 그들의 관계와 츠네오의 모습을 조제는 약자의 눈빛으로 애처롭게  바라본다

츠네오의 야속함을 일갈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나약하고 비겁하며 이기적임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동화같이 예쁜 결말을 만들어내지 못한 책임을 누구에게도 지울 수 없는 , 우리가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이다

보통의 출근길처럼 담담하게 조제를 떠나오던 츠네오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 사실 단 하나뿐이다. 내가 도망쳤다"라는 내레이션이 흐르고 기다리고 있던 옛 여자 친구와 함께 걷던 츠네오는 결국 길가의 난간을 붙잡고 통곡하고야 만다

"조제를 다시 만날 일은 없다"라는 슬픈 고백과 함께 무너지는 츠네오의 모습은 멀리서 바라보는 쇼트임에도 그 통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홀로 남겨진 조제를 보면 지난날 후지고 후졌던 나로부터 상처 받았을 누군가와 , 이별 뒤에 총 맞은 듯 신음하다 새로운 사랑에 뻔뻔스러운 부활을 반복한 내 지난날이 멋쩍다

어쩌겠는가 살아야지 , 살아가야지

겨울이 되고 차가운 볕이 내리쬐는 바다를 보면 떠오르는 , 내 청승맞던 지난날을 오래오래 시린 빛으로 비춰 준 이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렇게 나와 우리의 , 그대들의 인생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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