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 쓰는 나그네 Sep 26. 2016

표현의 기술

글 유시민, 만화 정훈이

표현에도 기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점점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인정받고 싶고, 다른 이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부각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재물을 모으는 사람, 사회적 성공에 갈망하는 사람, 학벌과 지식으로 뽐내려는 사람들로 넘쳐 나는 세상입니다.


Self PR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나를 드려내고 싶은 강한 욕구를 기품 있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글쓰기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표현의 기술에 허기짐을 느끼는 이들도 함께 늘어가는 현실입니다.


이 책은 유시민이라는 작가와 정훈이라는 만화가의 조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글 쓰는 작가와 만화를 그리는 작가가 만나면 어떨까? 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만화는 글이 표현하고자 하는 장황한 논리를 핵심적인 단어를 활용해서 간결하게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글 또한 표현의 기법과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사례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 스토링 펀딩의 '유시민의 글쓰기 고민상담소'를 통한 사례들이 여기에 기록된 듯 합니다.(후원금 목표가 3백만원인데, 3천만원이 넘게 모였네요. ^^)

[작가 정훈이의 만화]

글과 만화가 서로 보완하며 경쟁한다.

작가의 명성과 필력을 기존의 책에서 경험하였기에 만화가 글을 보좌하며 따라가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만화와 글은 똑같은 주제의 방향은 갖고 있지만 개별성을 띤 단단한 골격으로 깊이 있게 자신만의 단어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냉소적인 생각들을 만화가 주는 유머스러움으로 승화시켰고 글로써 자신을 비판했던 댓글들을 조목조목 재비판해 놓았습니다. 비판은 이렇게 하라는 선생님의 훈육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가끔은 너무 자신감 넘치는 유시민 작가에게 오만과 편견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설득과 공감의 논리보다는 반박과 훈육의 논리가 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다름을 이야기하지만 그 다름이 당신은 잘못했어라는 지적으로 다가서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무엇을 배우려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귀하게 다가오는 것은 배움보다 느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배우는 책 읽기'를 넘어 '느끼는 책 읽기'에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넓고 깊고 섬세하게 느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자 텍스트로 타인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능력이 생길 것입니다." -169-

존 맥스웰의 <어떻게 배울 것인가>라는 책처럼 배움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며 강조하는 책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평생 교육이 화두이고 배움을 통해 계속 진일보해야 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배워서만 뭐 하겠습니까? 배움의 목적은 배우고 익혀서 남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의 말처럼 배움을 넘어 느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게 하고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지식으로만 남겨지게 하지 말고 지식이 쓰임으로 인해 역사가 될 수 있도록 행동하게 해야 합니다.


그렬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표현의 기술을 살짝 덧입혀서 사람을 자극하게 하고 그 자극을 통해서 변화될 수 있는 글을 써는 것이 좋은 글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정치적인 목적의 글쓰기가 이에 해당하는 듯 합니다. 


'제1장 왜 쓰는가'에서 김훈 작가의 아래 인터뷰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나는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나를 표현하려고 글을 씁니다"

선명하게 둘을 나눌 수 없다면 울타리를 세우지 않아야 된다며, 여론형성을 위한 정치적인 목적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 합니다. 저도 이 대목은 동의합니다. 나를 표현하는 글로만 그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려는 목적의 글쓰기는 천박한 글쓰기가 될 듯 합니다. 울타리와 경계가 없이 나를 표현하며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글쓰기가 되었으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은밀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의 속사람을 끄집어 내어야 합니다. 글이 솔직하고 담백해져야만 읽는 독자에게 진정성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삶과 글이 혼연일체가 될 때, 독자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그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저자가 강조하는 표현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인자를 만든 2인자, 유방의 참모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