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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ug 30. 2017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여행 산문집

여행 산문집은 대체로 쉽게 읽힌다. 그 쉬운 글들이 문자로만 해석되어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바람이 부는 것처럼 삶의 흔적도 흘려 보내야 한다. 그 흔적이 머무르는 곳에서 쉼표와 느낌표를 찾게 만든다. 바람이 전해준 짧은 한 구절 '당신이 좋다'는 의미를 음미하면서 말이다. 


여행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그 과정에서 글이 생성되고 그 과정에서 깨어지고 넘어진 삶의 골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작가는 존경하는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의 등은 꺼칠꺼칠한 등껍질로만 거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가야 할 이정표가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도 결국은 삶의 길을 제대로 찾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다. 내 안의 내비게이션이 여행을 통해 잠시 돌아가라고 지시한다. 지친 삶의 휴게소, 잠깐 눈을 붙일 수 있는 그늘막의 역할을 하라는 것이다.


[책 속으로..]

첫 장의 제목에서 마음이 튄다. '심장이 시켰다'는 문장에 내 심장도 끄덕끄덕한다. 머리 속에서만 머물려서는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없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의 강렬한 불꽃이 튀어야 한다. 그 불꽃이 낯선 곳으로의 발길을 이끌게 만든다. 그곳은 과거와 미래의 세계가 맞닿은 곳이기에 작가의 말처럼 시간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벌어오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내 심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심장이 시키면 내 몸뚱아리는 잘 움직일까?

심장이 가고 마음이 가고 몸뚱아리가 간다면,
미련이라는 아쉬움도 저 멀리 떠나보낼 수 있으리라...

작가는 유난히 색깔에 애정을 드러낸다. 배고픔의 색깔은 주황이고, 누군가를 강렬하게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색깔은 빨강으로 비유했다. 오랫동안 나를 붙들고 있는 건 슬픔의 색깔이고, 당신이 좋다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렇게 강조하는 색깔에서는 분명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어떤 모양이든 어떤 빛깔이든 그 나름대로의 향기가 깃들어져 있다. 그 향기에도 목소리가 있을 것인데 그 목소리를 찾아내고 들려주는 이들이 작가와 시인들이다. 그들의 능력은 말하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특출함에 있다. 색과의 교감을 통해 우리에게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가끔은 우리와는 다른 느낌일지라도 그 특출함이 부러울 때가 많다.


이 책에서는 없는 것이 많다. 목차도 없고, 페이지 번호도 없고, 제목이 없는 글들도 있다. 무조건 있어야만 한다는 편견을 깨트리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버릇처럼 계속 목차를 찾고 페이지를 찾다 포기하고 만다. 너무나 세상의 틀에 익숙해져 있나 보다. 그 틀을 벗어나면 큰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이다. 그 틀 하나하나를 지워가다 보면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 가벼움이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 메이지 않는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여행이 추구하는 메이지 않는 자유함을 말이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여행에서 만난 바람은 시원한 향기를 전해준다. 내가 평소 알고 있던 바람이 아니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인데 때 묻은 텁텁함이 아니라 알싸한 시원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 맘 속에 꼭꼭 담고 있던 사람이 그리워지고 좋아지나 보다. 바람결에 전해지는 당신의 체취와 향기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만난 낯선 바람이 낯설지 않아서 더 좋다.

 바람이 분다
그 바람에 실려 온
당신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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