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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ug 10. 2018

라틴어 수업

한동일 신부(가톨릭 사제, 바티칸 대법원 로마나 변호사)

[라틴어에서 도끼를 찾다!]

라틴어라는 언어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사람과 삶에 대한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다소 생소하고 생경함이 거부감보다는 호기심으로 또는 익숙함으로 다가오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이력과 함께 언어에 대한 그의 능력과 노력을 보며 경탄할 뿐이다. 공부하는 노동자를 자청하는 그를 보며 줄탁동시의 비유처럼 한 권의 책을 통해 사제지간의 연을 맺은 듯해서 좋다. 작가는 복잡한 언어의 체계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를 습득하면 다양한 사고의 확장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어렵고 힘든 일을 익히고 나면 그다음에 주어진 일들을 쉽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깊은 골짜기에서 허우적대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으로 갇힌 틀을 깨우는 도끼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면 과한 것일까?


라틴어 수업에는 라틴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로마의 유명한 정치가 카이사르, 키케로도 있었고 그 시대의 문화와 욕설도 있었고 요즘 세대에 대한 비판의식도 함유되어 있었다. 청년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그들에겐 철학이 빈곤하여 공부한 것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면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가슴에 품었어야 하는데 그럴 생각도 그럴 가슴도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눈 앞의 이기적인 욕(욕심 욕, 慾)과 망(바랄 망, 望)만 하고 있다. 누가 더 커 보이는가? 누가 더 세 보이는가? 누가 더 부유해 보이는가? 이 보이는 것에만 열망하는 세상이 지금 청년들에게 주어진 세상이다. 그래서 인문학적 철학이 필요한 것이고,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의미를 찾는 과정, 도대체 왜 사는가? 에 대한 궁극적 질문도 필요한 것이다.


[삶의 매듭짓기!]

작가는 이 책이 자신에게 하나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문으로 향하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매듭을 하나씩 짓는 과정이다. 긴 줄일지 짧은 줄일지는 모르지만 미끄러지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면 하나씩 매듭을 짓는 마무리 과정이 필요하다. 삶이 복잡해지는 것은 매듭지어야 할 때 매듭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해지지 않고 복잡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매듭을 짓는 과정이다.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독자의 생각을 함께 덧입히다 보면 새롭게 눈뜨는 세계가 펼쳐진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다는 라틴어 "Do ut des (도 우트 데스)" 상호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주고받는 과정이 서평 or 독후감이라는 이름으로 매듭지어지는 것이다. "Do ut des & Give and Take"라는 단어는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저자는 신뢰와 믿음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주고받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서양의 문화의 기반에는 Do ut des가 깔려서 움직인다.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얻고자 하는 바를 위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갖출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요. 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갖추는 것, 그것이 결국은 힘이 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일 겁니다. (P.122)


[소통은 이렇게..!]

라틴어의 특성 중에는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하지 마라' '주의해라'는 명령형이 아니라 '주의해 주십시오'라는 존댓말의 범주 안에서 법률적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지 내려다보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 문제를 언어 사용적 측면에서 실마리를 찾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언어가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깊이 문화적으로 정착해 있다는 의미로 봐도 될 것이다. 소통은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다. 내가 존중하면 상대도 존중하게 되는 것은 기본적인 사실이다. 당연히 가식의 언어가 아니라 진심의 언어가 동반되어야 하겠지만. 여기에서도 잘 주고받기의 Do ut des가 상호작용하는 것일 게다.


[오늘이 행복해야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의 대사로 대중화된 "까르페 디엠"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도 되었다. 단순히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더 깊게 다가왔다.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도 있었고 우리가 걸어온 삶의 과정이 있었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나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까르페 디엠과 함께 "Nolite timere (놀리테 티메레)" 즉 두려워 말라라는 단어를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미래에 붙잡혀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지 못해서야 어떻게 삶이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 가장 큰 공감을 받은 부분이 아래의 인용문이다.]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인간은 정말 타인에게 상처만 주다가 가는 걸까요? 제가 누군가로부터 상처받고 온 어느 날 밤에 제가 상처받은 내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처음엔 제게 상처 준 사람에게 마음속 깊이 화를 내고 분노했습니다. 그의 무례함에 섭섭한 감정을 넘어 치욕을 느끼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가 과연 나에게 상처를 주었나?' 하고요.

제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그가 제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제 안의 약함과 부족함을 확인했기 때문에 제가 아팠던 거예요.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그때부터 저는 상처를 달리 생각하게 됐습니다. (p.257)

책을 읽기 전 고민이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와 소외감 등으로 힘겨운 마음이 들 때, 이 문장을 읽게 되었다. 내 마음을 한 겹 한 겹 벗겨보니 상처가 아니라 내 안의 약한 부분을 확인해서 아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원인을 진단받으니 해결책이 달라졌다. 다른 누군가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온전히 받아들여지면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사람들마다 꽃피는 시기가 다르고,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다르듯이 이 책을 통해 받아들이고 공감하는 부분들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 곁에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는 라틴어의 어원과 의미를 통해서 질문하고 더 깊이 생각하는 사고의 영역을 키워나갈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라틴어를 지식과 언어구사의 도구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좋은 질문들을 통해서 나를 들여다보며 긴 침묵 속에서 깨어나는 도구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Nolite timere
(놀리테 티메레)
두려워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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