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디자인하라 -001
아우구스티누스는 과거를 '이젠 없는 시간'으로, 미래를 '아직 없는 시간'으로 규정했다. 그에게 과거란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미래란 기대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기억과 기대의 중간에 오늘이라는 단어가 있다. 오늘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이젠과 아직의' 역사도 바뀌게 된다.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붙어 있는 글귀다. 오늘은 내가 무덤에 들어가지만 내일은 네가 될 것이다. 그러니 마지막을 위해 잘 준비하라는 의미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엄마 젖을 빠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죽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먹는 것이다.
세상에 나와서 이룬 것도 본 것도 성취한 것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현실적인 질문이 아닐까?
생존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죽음이 주된 목적이 되면 살아갈 방향도 달라진다.
생존은 나를 위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투쟁이다. 하지만 잘 죽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내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죽음이란 세상과 결별하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기에 헤어지는 여운과 아쉬움에 더 촛점을 두게 된다.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가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 행동과 내 삶의 발자취가 어떠했을까를 되돌아보는 것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과정이다.
그러고 보면 삶은 고단함의 연속이다. 스스로를 연단하며 견뎌야 한다. "삶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라는 선인의 말씀처럼 매일매일 자신을 두드리며 맷집을 키우는 과정이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주춧돌을 심고 그 위에 벽돌로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한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되겠지만 땀의 의미, 피의 의미를 몸이 느낄 때 오늘의 나에게 감사하게 된다. 또한 내일의 너에게 전해 줄 이야기가 생긴다.
'새벽을 깨우리라'는 말씀처럼 우리 안에 잠자는 새벽을 깨워야 한다. 매일 아침 좋은 글귀 한 문장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Hodie mihi, Cras ti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