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이 불쌍한 밤이다..

by 글 쓰는 나그네

아시안컵 8강전, 59년 만의 한풀이를 하는 날이다. 아이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치킨이 응원의 메시지로 날아왔다. 거실에 작은 상을 차렸다. 치킨과 음료수 그리고 시원한 무 한 접시에 입이 즐겁다. 축구 선수만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다. 축구 응원도 멀티플레이어의 요건을 갖췄다. 축구와 먹는 행위 그리고 수다가 함께 어우러져서 축구가 즐겁다. 응원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한 투쟁적 열망뿐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즐긴다. 이 함께라는 의미가 좋다.

경기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전개된다. 수비 축구, 안정을 추구하는 축구, 실수를 두려워하는 축구... 재미없는 요소를 두루 갖췄다. 스타플레이어의 이름도 얼굴도 화면에서 지워졌다. 화면에서 사라진 스타를 입 밖으로 불평을 널어놓으며 찾고 있다. 시간이 더해질수록 비판은 비난이 되었다. 그만큼 답답하다는 반증이다. 기대가 없다면 실망도 없을 것인데 내 안 깊숙이 '카타르 정도야'라는 안도와 기대감이 감춰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은 짧았다. 중거리 슛 한 방에 모든 운명이 갈렸다. 마지막 5분. 도저히 앉아서 볼 수 없었다. 한 손엔 음료수를 또 다른 한 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간절히 열망했다.

'야! 8강이 뭐냐? 쪽팔리지 말자!'

결과는 0:1. 실망감에 허탈해졌다. 아내와 아들은 패배와 함께 실시간 인터넷 댓글을 읽어준다. 비난 글로 도배된다. 분노를 표출할 합당한 권리를 가진 듯 매서운 댓글들에 힘이 실린다. 듣다 보면 재미도 있다. 하지만 씁쓸한 실망감은 감출 수 없다.


축구를 통해 축적하고 소비한 에너지를 빠르게 삶으로 전환했다. 내일을 위해 곧바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잊을 건 빨리 잊어야 한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빠르게 전환해 찬스를 만들 축구에서 일상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 또한 나의 삶이다. 이런 공세 전환이 빠른 것이 나이 듦이고 삶의 노하우다. 이불 속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패배의 상실감을 맞은 선수들이 애처롭고,
책임감을 가진 코칭 Staff도 불쌍하고,
무엇보다 치킨이 된 닭들이 불쌍한 밤이다.

그래도 치킨집 사장은 실속이라도 차렸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음의 상실감은 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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