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된 설날이다.
"제발 훈훈하게 끝나게 해 주세요"
이곳은 처갓집이 있는 대구이다. 모처럼 써리원이 먹고 싶다는 아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우선 각자 먹고 싶다는 종류별로 적었다. 아내는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처형은 바닐라, 딸은 애플민트, 아들은 엄마는 외계인 그리고 파밍파밍 바나나 총 5가지 맛을 적었다. 사이즈는 패밀리로 결정했고 가격은 19,500원. 아들이 주문하려 갔다. 애플민트는 없다며 뉴욕 치즈 케이크로 바꿨다. 딸은 왜 그 맛이 없냐며 불평만 늘어놓는다. 드디어 아이스크림 손에 들고 집으로 go go...
상을 펴고 뚜껑을 개봉한 이후 아들과 딸이 웅성거린다. 뭔가 이상하다며 살폈다. 아이들이 살피는 사이 나와 동서(손위 형님)는 먹기 시작했다. 새하얀 요거트가 시원하고 달달했다. 그러고 보니 요거트는 주문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말한다. 원하는 맛이 없다. 케이스도 큰 것 같다. 색깔도 다르다. 패밀리 사이즈가 아니라 그 위 사이즈인 것 같다.
처형이 폭풍 검색을 했고 검색 결과를 공포할 때까지 열심히 먹었다. 써리원 아이스크림이 맛나긴 맛나다. 달달함과 시원함이 입가를 맴돈다. 처형의 검색 브리핑 시 잠깐 먹기를 멈췄다. 화면으로 본 케이스의 색깔이 틀리다. 노란색이어야 하는데 파란색이다. 패밀리 사이즈가 아니라 하프갤런이다. 가격이 23,500원. 무려 4천 원이 차이가 났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하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냥 먹자.
바꾸려 가자.
먹었는데 어떻게 바꾸냐. 매장의 실수다 그러니 당당히 바꿔야 한다.
주문한 것보다 비싼 거다 바꾸려가면 돈을 더 내야 한다.
위에 3가지 말고 또 다른 맛이 있지 않겠냐? 더 먹어보고 결정하자....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사이에 아이스크림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3분의 2 정도 먹고 나서 다시 분위기가 급변했다. 위에 보이던 3가지 맛 밖에 없다. 우리는 5가지 맛을 주문했는데 똑같은 맛은 없고 메뉴도 3가지뿐이라니... 이러면 안 되지...
동서가 바꾸려 가자고 했다. 아이스크림은 벌써 바닥을 드러냈다. 다 먹었는데 어떻게 바꾸느냐며 아내가 반박했다. 이러고 가면 진상고객 취급받을 거다. 누가 바꿔주겠냐며 말이다. 다 먹은 아이스크림 케이스를 들고 간다는 설정도 웃겼다. 농담으로 생각했다. 그래도 원하는 맛을 못 본 아쉬움이 크다며 흥분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나다. 그냥 분위기에 취해서 한 마디 해 본 것뿐이다.
그런데 잠잠히 듣고 있던 처형이 카드를 꺼냈다. 이 카드로 하프갤런 결제하고 패밀리 사이즈 한 개 더 사 오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며 생각하는 순간, 동서가 가겠다고 나섰다. 아내는 이렇게 정당하게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잘 못 들고 온 아들과 함께 설명하고, 새로 주문해 오겠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내 말은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묻혔다. 그들의 눈은 뭔가 해 보겠다는 의지가 강한 눈이었다. '가 봐야 뻔한 거지. 쑥스럽게 왜 가니!' 라는 생각만 들었다.
다 먹은 케이스에 휴지와 플라스틱 숟가락을 담았다. 왜 이것까지 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빈 통으로 가져가기는 애매했나 보다. 다시 써리원으로 출동했다. 이번엔 아들 혼자가 아니라 동서와 함께 말이다. 동서는(손위) 덩치가 크다. 키는 195cm이고 몸무게는 110kg 정도 나간다. 외모적으로는 위압감을 주는 느낌이다.
30분 정도 지난 후, 두 명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왔다. 한 손에는 패밀리 사이즈 노란색을 들고 서 말이다.
흥분한 아들이 매장에서의 이야기를 말한다.
매장에 들어서니 고객 한 분과 직원 세 분이 있었다. 주문받는 옆에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니 약간 움찔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빈 케이스를 내밀며 이거 주문한 거랑 다른 게 왔다고 얘기했다.
"보소. 이거 머꼬."
직원이 영수증과 비교하더니 잘못되었다며 시인했다. 아마 동서의 말투와 외모에 일단 밀린 듯했다. 자신들이 고객에게 전달할 때 내용물에 대한 설명을 한다고 했다. 아들은 뒤에 한 말은 못 들었고, 앞에 한 말인 10분과 숟가락 8개만 들었다고 했다.
뒤이어 매장 직원과 동서의 대화가 오고 갔다.
"그냥 드릴게요"
"잘 못 준거는 인정하는 기가?"
"그러니, 그냥 준다고 하는 겁니다"
"알았소. 그러면 이거 계산해 주소!"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못 알아듣는 것 같은지 점원은 다시 말했다.
"공짜로 준다는 말입니다"
"먹었으니 그냥 계산해 주소"!"
"그냥 드릴게요"
"아 참. 그냥 계산해 주소!"
똑같은 말이 15번 정도 계속 이어졌다.
아들은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 같아 짧은 시간 기도했다고 한다.
'제발 훈훈하게 끝나게 해 주세요'
아들의 기도에도 끝나지 않고,
"공짜로, 그냥, 바로 준다니까요" 점원에 이어 매장의 지배인이 나서서 이야기했다.
"알았으니, 바로 계산해 주소!" 동서는 계산해 달라며 다시 카드를 내밀었다.
이제는 직원들이 귀찮아했다. 뒤이어 손님들이 들어와서 대기하고 있다. 옆에 아주머니들이 킥킥대며 웃다가 말한다.
"여기서 와이 카노. 나도 주문 좀 하게 비끼소!"
이 한 마디에 동서가 패밀리 사이즈를 받으며 이야기했다.
"뭐라카노. 내 지금 계산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계산할 테니 그때 보입시다!" 라며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당당히 처형에게 카드를 내민다. 정당하게 해결하고 왔다고...
패밀리 아이스크림과 함께 말이다. 솔직히 계산하고 오겠다고 했으니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세상은 부딪히고 봐야 한다. 아내는 말한다. 진실하게 고백하니 선물을 준 것이라고. 그리고 아들은 이모부(동서)이니까 갔다고 하며 우리 집 식구들은 아무도 안 갔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정당하지 못해서, 누나는 귀찮아서, 그리고 아빠는 돈 아까워서... 돈 아깝다는 말이 왠지 거슬린다.
두 개의 아이스크림을 비교해보니, 설날 써리원 이벤트(?)에 당첨된 느낌이다. 19,500원으로 패밀리와 하트갤런 사이즈를 다 맛보았다. 또한 맛도 모두 달라서 8가지 맛을 봤다. 다만 뒤에 먹은 패밀리보다는 먼저 먹은 하트갤런이 더 맛있었든 것은 확실하다. 공짜보다는 제대로 돈 주고 먹는 것이 더 맛있나 보다.
아들의 순간적인 기도에 많이 웃었지만 아이스크림 하나로 배스킨라빈스와 친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이참에 아이스크림 종류도 케이스도 알게 된 것도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