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쭌) 글을 디자인하다 - 015
글을 디자인하다 - 015
이렇게 짧아져 가다가
내일은 아주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만의 이름을 붙여보자!]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내일은 아주 없어져 버릴지도 몰라"의 의미는 짧아져 가는 해를 보았을 때 느꼈을 공포를 표현한 문장이다. 매년 동지(冬至)가 되면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시기를 맞이한다. 이쯤 되면 날마다 길어만지는 밤을 보며 아쉬워한다. 이러다 점점 내일의 태양은 떠오르지 않으면 어떡하지? 역설적으로 동지를 깃점으로 밤은 짧아지고 낮은 다시 길어지는 시점인데 말이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듯
긴 것이 있으면 짧음도 엄연히 존재한다.
기다리면 돌아오고 걷다 보면 도착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일이라는 이름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의 무게가 더 하다. 해가 지면 해가 뜨는 당연한 이치를 수십 년간 익히고 배워왔지만 길어지는 어둠을 보며 까만 두려움의 공포를 지우지 못한다. 그래서 지극이 단순한 자연의 이치를 작가나 시인들은 매의 눈으로 매섭게 드려다 본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만의 낙인을 찍는다. 그 낙인에 자신만의 색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내가 낙인찍었으니 넘보지 말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사물에 이름을 부여해서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기도 한다.
짧아진다고, 어둠이라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짧아지고 어두운 놈에게 색다른 자신만의 이름을 붙여 보자. 그러면 생명의 지문이 날인되어 그 이름에 날개를 달 것이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하고 꿈꾸지 못한 다른 세상을 향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짧아져 가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나는 설렘과 호기심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말이다.
[메이고 묶이지 말자]
이 설렘과 호기심을 갖도록 만들어 준 작품이『그리스인 조르바』이다. 20C 중반을 대표하는 유럽 고전문학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자유인의 삶이 어떤 삶인지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삶의 빗장을 채우지 않았다. 그래서 메이고 묶이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흐르는 곳으로 발길을 내딛는 자유함이 그에겐 있었다. 과거는 묻어 버리고 내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 이 순간의 즐거움을 향해 몸이 부서지도록 즐긴다. 일을 하면서 때로는 놀이를 하면서 그리고 사랑을 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그려나가는 삶을 산다. 그래서 부러웠다. 내 삶인데 다른 이를 위한 삶을 살고 있으니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내 안에 나는 없고 타인의 그늘만으로 채워져 있다. 그 그늘을 따스한 햇살 가득한 빛으로 채워나가게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조르바이다.
조르바는 내일의 삶보다 지금의 삶에만 집중했지만 우리에겐 오늘만큼 내일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루살이 인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살아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메이지 말고 현재에 묶이지 않아야 미래의 그림을 그려나갈 자유를 얻게 된다. 자유인의 의지가 내면에 채워질 때 현재의 틀을 탈피하며 박차고 나 갈 힘을 얻게 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걱정에 휩싸여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묶여 오늘이 짧아져 간다며 한탄하고 있다. 그러면서 내일의 삶이 없어져 버리지 않을까라며 두려워하는 여리고 여린 삶이 우리네 삶이다.
[내일과 내 일에 대한 희망을 갖자!]
내일(來日)을 향해 그리고 내 일(my job)을 향해 달려가야 할 시기이다. 내일이 없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내 일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자기만족과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감이 없다면 다가 올 내일도 무의미하다. 오늘보다 점점 내일의 기대감이 짧아져 간다는 것은 희망이 없어져 간다는 의미이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살아갈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인생은 그렇다. 포기는 두려움을 없애주지만, 희망도 함께 지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김난도]
삶을 가장 피폐하게 만드는 일은 사람에게 희망을 지우는 것이다. 내가 살아갈 이유와 내일에 대한 작은 소망이 희망이라는 바람의 꽃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삶이 더 아름다워진다. 이 아름다움이 나와 세상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에너지가 된다. 이 에너지가 축적되었을 때, 주위를 맴도는 곡선 운동이 직선운동으로 변화하게 된다. 곡선으로 주위를 맴돌다 직선으로 길을 열며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 이 직선운동의 직진에는 축적된 힘이 있고 열망이 있다. 그 힘과 열망이 짧아져 가는 내일을 길어져 가는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함께 짧음을 길게 만드는
변화의 열망을 만들어 가자.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