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쭌) 글을 디자인하다 - 012
내 고향은 거제도이다. 작은 농어촌 마을로 앞은 바다이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을 골목골목에는 아담한 담장이 벽을 이룬다. 시골 담장엔 온기가 살아있다. 차가운 돌 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뚫린 구멍 사이사이로 시골의 정이 녹아있다. 담장의 높이는 머리 아래에 위치해 집집마다 무엇을 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공개된 공간이다. 서로 공간을 공유하니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이 숟가락 개수까지 헤아릴 정도로 가까웠다.
그런데 시골 담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흙 벽으로 숨이 통하고, 돌 벽으로 공간이 통하던 곳이 시멘트로 답답해지다 벽돌로 단단히 막혔다. 머리 아래로 보이던 시골의 정은 높은 담장의 벽 앞에 멈췄다. 시골인심도 벽돌로 세워진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그 벽돌 하나의 무게만큼 마음의 벽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양반집으로 불리던 정겨운 집은 허물어졌고 단단히 세워진 3층짜리 벽돌집으로 변했다. 마을 어귀의 돌집은 시멘트로 둘러싸이고, 길과 벽에는 살가운 정이 사라졌다.
글을 디자인하다 - 012
벽을 허물면 길이 된다.
이제는 벽과 벽 사이의 길이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벽돌 한 장의 무게만큼 벽은 더 단단해졌다. 벽이 벽을 부른다. 더 쌓고 더 단단해지고 더 높아지는 개인주의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두고 긴 장벽을 설치하려고 한다. 민주당의 반대로 장벽 설치의 의지는 있으나 실현까지는 싶지 않을 듯하다. 이는 개인주의를 넘어 국가 주의화되어가는 것이다. 만리장성을 만든 시대로 회귀하는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벽을 허물어야 할 시대에 국가 간의 긴 장벽을 세운다니 인류애는 사라지고 이익집단의 공룡만 살아남는 것 같아 슬프다.
개인주의는 거를 수 없는 대세지만,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마을공동체를 표방하며 막힌 사람 간의 벽을 열어 마음의 길을 열게 하려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벽돌로 쌓인 콘크리트 장벽의 답답함을 느낀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아파트에서 전원주택, 마을로 회귀하려는 경향을 넘어 직접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는 활동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려는 모습들이다. 대동사회는 되지 못하더라도 소강사회의 꿈은 간직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공동체적 삶을 사는 길이다. 삶의 중심은 나와 우리다.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우리라는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플라톤은 만물에는 그 고유의 목적(telos)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텔로스는 뭘까? 길고 높은 장벽을 세워 단절을 추구하는 것일까? 벽을 허물고 길을 만들어 함께 어울리는 것일까?
인류의 역사는 산에 막히면 뚫었고 제도에 막히면 개혁을 했고 사람에 막히면 소통을 했다. 때로는 강력한 힘의 수단을 동원했지만 막히면 뚫고 나갔다. 실크로드가 막혀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이 시작되었고, 신분제도에 막혀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시민혁명으로 뚫었고, 사람 간의 장벽은 공동체 사회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빅토르 위고는 가장 힘든 싸움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했지만, 사람과 사람의 장벽을 허무는 싸움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텔로스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담장을 세우고 막힌 벽은 허물어야 한다. 아무것도 없으면 방향을 잃게 된다.
넓은 광야에 길을 인도해 줄 얕은 담장은 필요하다. 그 방향을 이끌 길이 시골 담장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담장 사이로 숨이 통하고
공간이 통하는
시골 담장의 정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