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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Feb 28. 2019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한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최재천 원장님의 추천사에 살짝 댓글을 달았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사람은 도시를 떠난다.


아무리 공간의 미학을 잘 살린 좋은 도시를 만든다고 해도 인위적일 수밖에 없다. 도시화된 세상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느끼고 싶은 욕구가 도시를 떠나 마을로 향하게 하는 이유이다. 디지털화된 도시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함께 균형을 이룬다면 워라밸을 본뜬 '디아벨'의 시대가 될 것이다.


유현준 교수는 '공간'에 대한 의미 부여를 많이 했다.

공간이 없다면 빛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p17-

벽과 벽, 건축물과 콘크리트 사이에 공간을 두어 사람과 소통하게 만든다고 한다. 여백의 미를 중시하듯, 공간의 미도 중시했다. 공간은 콘크리트로 막힌 벽을 숨 쉬게 하는 숨구멍이다. 사람이 숨을 쉬듯 도시도 숨을 쉬는 틈, 즉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간은 곧 여백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건축물을 아름답게 세워주는 것이 공간의 역할이다.


유럽의 도시와 미국의 도 차이점은 자동차의 발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유럽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 마차가 운행하는 도시 구조이고, 미국은 자동차가 발명된 이후 자동차를 위한 도시 설계가 되었다고 한다. 즉 운송수단에 따라 도시 구조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차가 천천히 가듯, 보행자의 걸음에 맞춘 걷기 좋은 곳이 유럽 도시들이다. 폭이 상대적으로 좁고 교차로와 자주 만나게 되면서 더 다양한 선택과 볼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것을 저자는 우연성과 이벤트가 넘친다고 표현했다. 이 우연성과 이벤트가 사람을 심심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걸으면서 볼거리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골목과 복도에 대한 대비도 재미있다. 예전 어렸을 때는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집은 골목을 지나 사이사이에 위치해서 골목은 사람이 통하는 소통 장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골목은 없고 복도만 남아있다. 골목과 복도의 근본적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로 저자는 정의한다. 촘촘한 대형 아파트 단지에게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겼다. 우리는 하늘의 소중함을 잊은 채, 콘크리트 장벽 안에서만 살려고 한다. 파랗고 푸르고 청명한 하늘은 단조로운 천장 페인트에 묻혀 버렸다. 빼앗긴 들을 찾아오듯, 빼앗긴 하늘을 찾아야 한다. 

낮은 천장의 울타리에 갇혀 수학 문제 하나에 열 올리는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 청명한 가을 쪽빛의 하늘에 우리 아이들이 물들었으면 좋겠다.


좋은 건축물은 인간이 들어가서 사용해야 하는 곳이다. 우리가 들어가서 살 곳이니 당연히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데 반대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뽐내고 싶은 건축물을 원한다.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용적인 면이 더 중요함은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도시에 대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한번 둘러보게 된다. 내 주변에는 어떤 건축물이 있고 도로와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또한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골목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빼앗긴 하늘을 되찾아야겠다는 열망도 생겼다.

청명한 하늘을 찾지 못한다면 떠나리라, 이 도시를 벗어나 그 하늘을 찾아서...,


<마음에 담은 문장>


1. 공간이 없다면 빛도 존재할 수 없다. 공간이 없다면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건축은 이러한 공간을 조절해서 사람과 이야기한다. -17-


2. 건축물이 만들어지기 전의 공간은 막연하다. 하지만 벽을 세우게 되면 막연해서 느껴지지 않던 공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17-

* 인간은 동그라미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이 두려움을 이기려면 한가운데 점을 찍으면 된다. 그러면 동그라미의 정체가 밝혀진다. 동그라미란 한 점에서 동일한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이게 바로 이집트인들이 사막 한가운데에 피라미드를 세운 이유라고 한다. 사막 한가운데 피라미드를 세움으로써 그들은 그 막연한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정복할 수 있었다는 거다. <미학 오디세이-진중권>


3. 유럽의 도시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발명되기 오래전부터 생성된 것으로, 도시 내 도로망들이 사람 혹은 사람의 보행 속도보다 약간 더 빠른 마차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다. ~ 따라서 물리적인 도시의 도로망은 짧은 단위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도시는 자동차를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가 대부분이다. -24-


4. 보행자가 걸을 때 미국 도시에 비해 유럽 도시가 더 자주 교차로와 마주치게 되고, 그만큼 보행자는 더 다양한 선택의 경험 혹은 진행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난 도로의 공간감을 체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 이러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이 생겨날수록 그 도시는 우연성과 이벤트로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24-


5. 사람은 시속 4킬로미터로 걷는다. 너무 느려도 사람들은 걷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점의 입구가 자주 나오는 거리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든다. -46-


6. 골목과 복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 근본적인 차이는 하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우리의 대형 아파트 단지는 우리에게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 갔다. -55-


7. 골목길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길 이외에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는 하늘을 향해 열린 공간이었다. -56-


8 은행가 사람이 모이면 예술 이야기를 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 이야기를 한다. <오스카 와일드>99

고속도로, 자동차와 더불어 냉장고는 당시 미국 사람들의 삶을 교외에 위치한 주택에서의 삶으로 개편시켰다. -104-


9. 가로로 형성된 길은 스트리트이고 세로로 난 길은 에비뉴(avenue)로 명명되어 있다. -112-


10. 우리는 역사 시간에 이 만리장성이 진시황제가 만들었다고 배웠지만, 실은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도자기 수출한 돈으로 개축된 것이다. -116-


11. 좋은 건축물은 소주가 아니라 포도주와 같다. -147-

 * 소주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조되는 술이지만(일률적이며, 아파트 등) 포도주는 똑같은 재료라도 담그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토양, 기후, 사람, 환경 등.. 그래서 좋은 건축물이 된다.(다양한 전원주택 등)


12. 미국은 '공중권(air-right)'이라는 법규가 있다. ~ 자신의 땅 위에 지을 수 있는 29층의 권리를 옆의 땅 주인에게 팔 수 있는 법이다…. 1층의 땅을 팔지 않을 때 1층 위의 공중의 권리를 구매해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150-


13. 유럽의 대형 교회는 사실 규모가 크지만 항상 그 건축물의 크기와 비슷한 규모의 광장이 앞에 있고 광장 주변으로 상점들이 위치해서 자연스럽게 시민을 위한 대형 외부 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공간 구조가 생긴 배경은 예배당을 지을 때 돌을 쪼아야 하는 작업 공간이 필요한데 광장이 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64-

 * 유럽의 건축물은 자연스럽게 역사적 유물이 되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수 십 년에 걸쳐 장구한 시간의 건축기간이 건축물을 홀로 두지 않고 주변과 상권이 형성되며 함께 건축되어진다. 지어진 이후 건축물과 광장은 서로 보완되어 발전한다.


14. 대부분의 경우 대예배당은 주중에는 문이 잠겨 있다. 이렇듯 전도를 중시하는 교회가 건축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 더 폐쇄적이다. 교회가 문턱을 낮추고 전도를 원한다면 교회의 건축 공간 디자인부터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65-


15.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상상의 전기]라는 시,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205-


16. 자연은 적절한 수준의 무질서를 보여 준다. 그래서 좋은 사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으로 무질서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적절하게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환경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225-


17. 창의적인 사무 공간이 되려면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225-


18. 유럽의 성공적인 광장에는 두 가지 법칙이 발견된다. 하나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거나, 둘째로 광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위치해 있다. -280-


19. 좋은 건축은 내부에서 외부를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 건축은 인간이 안에 들어가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301-


20. 서양에서의 공간을 뜻하는 단어는 'space'로, 이 단어는 동시에 우주를 뜻하기도 한다. 우주라는 영어 단어는 universe, cosmos, space 이 세 단어가 혼용되어서 쓰인다. Cosmos라는 단어의 의미는 혼돈이라는 뜻의 chaos의 반대어로 수학적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space = 수학적 규칙'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333-


21. 단어를 통해서 살펴보면 서양인의 의식 속에는 비어 있는 우주, 공간, 수학적인 규칙을 내재하고 있는 cosmos 등의 의미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공간을 '수학적 규칙을 가진 비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333-


22. 이처럼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공(空 빌 공)'과 사이라는 뜻의 '간(間)'이 합성된 단어이다.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져 있다. -333-


23. '정자'는 자연과 건축물 사이의 물로 확보된 빈 공간에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건축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디자인은 자연을 극복할 대상으로 생각하지도 않고, 이용할 대상으로도 생각하지 않고, 다만 자연을 대화의 상대로 보는 동등한 관계 설정이 있고서야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이다.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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