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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Mar 22. 2019

『중력』

권기태 장편소설

"우리는 무게 없이는 살 수 없고 무게가 있는 곳에는 중력이 있다" -440-

삶을 지탱하는 힘은 가벼움이 아니라 무거움에 있다. 든든한 뱃심, 짐에 눌린 어깨, 경험과 지식을 통한 앎과 행함의 과정을 거치며 가벼웠던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새털 같이 가벼워서는 중심을 잡고 서 있을 수 없다. 무게가 있는 곳에 중력이 있듯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삶도 있다.


'중력'엔 매력이 숨겨져 있다. 홀로 있지 않고 누군가와 교감하려는 끝없는 노력... 무중력으로 오래 살 수 없듯, 혼자서도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이웃과 멀어지고 가치관으로 떨어지고, 가족 간에도 분리되는 세태에 한 없이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중력에 마음이 쏠린다. 지구와 물체를 끌어당겨주고 사람과 사람도 끌어당겨서 관계를 맺게 한다.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강한 신념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이 중력에 역행하려는 이들이 있다. 예전 코미디에서 자주 회자된 "지구를 떠나거라"라는 유행어처럼 지구를 떠나 무중력의 세계로 도전하는 이들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 이 소설이다. 삶의 끌어당김에 순응하기보다 역행하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역행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도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2008년 한국인 최초의 우주인인 이소연, 고산에 대한 이야기를 모티브로 담았다. 기본 골격은 러시아 가가린센터 취재를 통해 구상했지만 오로지 상상과 취재만으로 썼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말 그대로 상상과 허구가 가미된 소설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구상하고 취재한 지 13년 만의 산고를 거쳤듯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우주인이 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주인공 이진우를 통해 얻게 된 단어는 '끈기도 경쟁력이다'. 가가린센터의 최초 신검에서 탈락했지만 실망하고 그대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넘어지고 실패하고 탈락하더라도 또 다른 문을 찾아 나섰다. 닫혀 있다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닫힌 문을 여는 끈기가 삶을 개척하는 또 하나의 능력임을 소설에서 보여 주었다.


명의 최종 도전자들을 통해 배우기보다 이기기가 더 중요한 현실을 꼬집는다. 두 명이 탑승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두 팀으로 나뉘었을 때는 팀웍이 바탕이 된 선의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탑승자가 한 명뿐이고 다른 한 명은 백업이란 사실을 알고 난 이후, 돌변한다. 팀웍은 사라지고 무한 경쟁만이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하나의 팀이었다가 경쟁자가 되었다. 둘이 하나였는데, 둘이 둘이 되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승리했지만 이제는 배우기보다 이기기를 원한다. 같은 팀원이 경쟁자가 되어 반드시 꺾어야 한다. 정보와 지식은 가두고 나눔을 배제한다. "Only One"이 되기 위해서 2등은 잊힌다. 아니 기억되지 않기에 철저히 이기려 한다.

위기에 내몰리고 결정의 순간이 닥치면 언제나 고독하다. 언젠간 혼자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았을 때... 동료는 사라지고 경쟁자만 살아남는다. 서글픈 현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가가린센터의 부정에 항의하기 위해 맞섰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른 삶의 길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던지며 바른 길을 향해 걷는 이진우를 중심으로 하나가 넷이 되었다 다시 하나가 되는 길을 열어 두었다.


우주에 비견하면 티끌만 한 존재이지만 그 티끌들의 도전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태초의 세상과 사람이 아름다웠듯, 그 아름다움을 잊은 우리들을 향해 길을 나서라고 말한다. 눈 앞에 닫힌 틀을 벗어나 태초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 우주로 나가는 길인 것 같다. 우리를 가두는 중력의 세계를 벗어나 무중력의 세계에 진입하려는 과감한 용기가 부럽다. 도전이 힘겨운 단어가 됨은 늙어가는 증표이다.

그래도 세월을 탓하지 말고, 늙지만 낡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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