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면 할 수 있어!

(질문) 네가 원하는 그릇은 뭐니?

by 글 쓰는 나그네


`한다면 한다`라고 외치던 소녀가 어느새 대학생이 되었다. 무모한 도전과 두려움 없던 소녀의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처럼 되어가서 슬프다. 현실 세계의 높은 파고 앞에 주저주저하는 모습이 나를 닮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벽은 넘어서고, 강은 건너가고, 두려움은 떨쳐버려야 하는데 눈앞의 현실만 보고 그 이면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모습에 아프다.


『이카루스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용기 있는 사람이 되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냉장고를 여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 없다. 아무런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견해를 고수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르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소녀의 삶은 냉장고를 여는 과정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냉장고 안을 채우는 연습이 필요하다. 부모가 준비해 놓은 냉장고 안 음식은 이젠 없다. 무언가를 얻으려면 채워야 한다. 채우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안의 약함을 허물어야 한다. 허무는 과정에서 실패와 넘어짐, 실망, 상처를 맛보겠지만, 그 아픔을 안다는 것만도 한 단계 성숙했다는 증거다. 아픔과 절망의 벽 앞에, 울며 다시 일어서게 된다면 이제는 네 손으로 냉장고를 채우게 될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훈련이 청년기 삶의 중요한 과정이다. "긴 줄에 선 한 명일 것이냐? 긴 줄을 벗어난 아티스트가 될 것이냐?" 선택은 결국 소녀의 몫이다.


어릴 적 소녀의 꿈은 여군이었다. TV에서 늠름한 여군의 모습에 매료되어 여군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하던 얼굴이 아직 선하다. 너무 자신감 넘쳐 `여군을 꼭 해야 하겠니?`라며 다시 물었었다. 많고 많은 꿈 중에 왜? 하필 여군이라니? 그러면서 이왕 할 거면 장교가 되는 것이 어떠냐는 물음에 잠깐 생각만 하더니 대답이 없었다. 며칠 후 꿈 이야기가 나와서 한 번 더 물었다.


"이왕 하려면 여군 장교가 어떠니?"

"여군 안 할 거예요."

"왜? 무슨 꿈이 그렇게 쉽게 변해?"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어요."

"!...."


아마 장교가 되려면 육군사관학교를 목표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며칠 전 질문에 여군이 되는 것을 포기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도 싫다는 의미다. 스스로 판단한 것 같다. 내 그릇은 이만큼이라고. 너무 일찍 자신의 그릇을 제단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눈앞의 화려함은 좋지만, 그 뒤에 따르는 노력의 고통은 감당하기 싫어한다. 하나님은 감당할 고통만큼만 허락하셨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에게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 낼 힘도 함께 주셨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먼저 포기하고 회피할까? 그것은 능력은 주어졌는데 그 능력을 감당할 그릇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은 다양한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다. 그 물을 담으려면 다양한 그릇이 필요하다. 스스로 모양을 만들 수 없는 존재이기에 누군가의 그릇에 담겨야 한다. 고통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물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 동그란 그릇이거나 네모난 그릇 아니면 타원형 그것도 아니면 자연이 만든 그릇의 모습을 띠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그릇을 보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어떤 모양이든 우리가 만든 그릇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그릇도 고통과 위기의 그릇도 모양은 우리가 결정하게 된다. 눈에 보이는 그 모양을 보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위기는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 자신과 반대의 상황에 있는 친구를 데려온다. 위기의 반대편에는 ‘기회’라는 친구가 있다. 위기가 위험에 닥칠 때 기회라는 친구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이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위기가 나서면 기회는 묵묵히 지켜본다. 절대 나서지 않는다. 위기가 스스로 헤쳐나오기를 끝까지 기다릴 뿐이다. 그 긴 기다림의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나온다면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친구에게 쏟아부어 준다. 다만, 포기한다면 기회도 돌아서고 만다. 자신의 존재가 친구에게 필요 없어졌다는 것에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면서.


위기와 기회처럼,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흑이 있으면 항상 그 반대편에 백이 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다. 결핍이 있으면 그 결핍을 보완할 대상을 함께 주신다. 그래서 위기는 새로운 힘을 주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보이는 그릇에 현혹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봐야 한다. 내 안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스스로 담을 수 있는 내용물을 늘려가야 한다. 그 내용물이 미래의 나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청소년기 꿈은 수시로 변한다. 사유가 어떠하던 상관이 없다. 다만, 현실 앞에 이상까지 스스로 꺾는다면 불행한 일이다. 다시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라게 된다. `한다면 한다!`라고 외치며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던 소녀의 모습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다. 그때는 두려움이 없었다. 아니, 두려움이 무엇인지 몰랐다.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두려움도 함께 쌓인다. 현실 벽의 힘을 느끼고 나면 생각도 쪼그라든다. 고래 꿈이 아니라 새우 꿈으로 변해 버린다. 멋모르고 설치던, 그때의 소녀 모습이 그립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너라면 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허리 펴고 똑바로 걸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