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펴고 똑바로 걸어라
(질문) 나는 아빠일까? 꼰대일까?
문자가 아프다
딸에게서 오는 문자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내가 너무 권위적이었느냐는 생각하며 반성하게 된다. 아빠에게 요구하고 부탁하는 내용이 너무 조심스럽다. 장황한 배경 설명이 끝난 후 원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어려우면 안 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처음엔 별생각 없이 문자를 받았는데 이제는 딸이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 내가 그렇게 어려운 사람인가? 스스로 되묻게 된다.
첫 아이를 낳고 반듯하게 키우고 싶었다. 예의범절 우수, 남에게 피해 안 주기 우수, 쓸데없는 고집 안 부리기 우수 그리고 부모 말 잘 듣기 우수……. 등 아이가 우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선이 되도록 포장하며 키웠다. 바른 생활 소녀처럼 또래에 비해 다른 길 가지 않고 반듯하게 성장하는 모습에 자부심도 느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요구를 하면 단호하게 "안돼!"라며 거절했다. 그 거절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딸에게 착하다는 칭찬도 덧붙였다.
가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며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더 강하게 맞섰다. 말로 이겨보라며 말싸움(논리)을 하다 논리 전개가 어려우면 부모에 대한 말버릇에 트집을 잡고 목소리를 키웠다. 스스로 자기주장을 해야 할 시기에 `논리력이 부족하다. 그게 말이 되느냐`라며 눌렸다. 더 배우고 익혀서 아빠와 상대하라며 무시했다. 그러면 더 열심히 준비해서 정돈된 자기주장을 펼칠 줄 알았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눌렸지만 딸이 대화와 토론 상대가 되기를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넘어서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난 후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딸은 아빠가 필요했는데 나는 훈육 교사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남에게 피해도 주지 말아야 하지만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또한, 담대해져야 한다. 누구한테도 손 벌리지 않고 도와줄 수 있는 존재, 즉 다른 이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베풀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는 필수이니 책을 많이 읽으라고 요구했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너를 단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 무시당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계속 주입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했다. 기대는 기대일 뿐,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임을 깨닫고 내려놓게 되었다. `너 인생이니 네 맘대로 살아라.`라며 훈육 같은 잔소리까지도 접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아빠에 대한 불평과 다른 친구 아빠를 비교하며 자존감을 잃어 간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에게는 따스한 심장이 필요했었다.
더 품어 줄 넓은 어깨가 필요했었다.
더 사랑할 가슴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따스한 심장보다 이성이 중요했고, 넓은 어깨보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사랑할 가슴보다 바른 행동이 더 중요했다. 가정과 아빠는 보호해주고 편안함을 주는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편안함보다 경쟁을 부추겼다. 사랑하는 자가 되기보다 승리자가 되기를 원했다. 지금의 친구가 아니라 미래의 친구를 비교해야 한다며 친구보다 도전과 꿈을 갖기를 원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입장이 아니라 딸의 입장에 서 봐야 했다. 내 생각이 아니라 딸의 생각을 들어봤어야 했다. 한참 인기 있었던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의 노래처럼 너의 목소리가 이제서야 조금씩 보이고 들리는 것 같다.
딸은, 첫째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많았다.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가정형편을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았고, 욕심도 내지 않는 것 같았고, 자기주장도 내려놓는 것 같았다. 가끔은 때 쓰며 달려들기도 해야 하는데 욕심보다 부모의 마음을 먼저 선택했다. 참 철없어져야 하는데 먼저 철들었고 자신보다 부모와 가족을 먼저 생각했다. 장녀라는 이름은 그냥 붙어지는 것이 아닌가 보다. 내가 막내라 장녀의 마음을 잘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먼저였다. 딸의 이런 마음은 예쁘지만, 너무 아프다.
그러니 이제는 `너 자신이 되어라(By yourself)`고 말하고 싶다. 주변인이 아니라 주인공의 삶을 살기를 원한다. 실패하고 실수하고 넘어져도 좋으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넘어져서 아프고, 실수해서 눈물 나고, 실패하고 낙담하게 된다면 언제든지 아빠에게 손 내밀고 가슴 내밀 공간을 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뛰는 심장도, 품어 줄 어깨도 그리고 사랑할 가슴도 준비되어 있으니…….
내 심장과 어깨와 가슴으로 포근히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