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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나그네 Aug 03. 2019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김정운, 그리고 쓰다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이라는 프로필이 눈에 띈다. 오십이 되던 새해 첫날, '이제부터는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삶은 반전의 역사이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살아온 그림이 있듯, 앞으로 살아갈 그림은 스스로가 선택하며 살겠다는 의미이다. 삶의 궤적이 사회가 정해 준 시스템에 맞춰 살아왔다. 태어나고 배우고 직업을 구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다. 돈을 벌고 문화생활이라는 이름을 붙여 삶의 의미도 찾는 과정도 밟았다.


저자는 항등성이라는 심리학 용어를 들고 왔다. '항등성' (주위 환경이 바뀌어도 사물을 일정한 방식으로 계속 보는 것)이란 지각심리학 용어처럼 시간은 흘려 주변 여건은 변하는데 과거의 삶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직적으로 보는 삶과 수평적으로 보는 삶의 경계에서 우리는 수평적 삶을 추구하고 있다. 두 눈으로 공간 감각을 봐야 하는데, 중요한 순간 한쪽 눈을 감고 들여다본다. 입체적 현상을 포기하고 평면적으로 해석한다. 그것이 편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현실 순응적인 삶을 부정하고 저자는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나섰다. 그것도 나이 오십에.


이 책에서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있다. 저자가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글을 먼저 쓰고 그림을 그렸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림을 먼저 그리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림을 통한 이미지가 글을 대화체 형식으로 그림 지어나가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배운 그림을 통해 글과 그림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부럽다. 막연한 이미지가 그림으로 살아나고 그 그림이 말하는 글이 된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글이 힘들면 그림으로 해석하는 맛도 있다. 챕터의 마지막에 담긴 짧은 문장의 글에 마음이 홀린다.

이제까지 고개를 수 없이 가로저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삶이 가끔씩 힘들었을까? 짧은 글에 경탄하게 된다. 길면 사실 지겹다. 긴 글과 짧은 글이 함께 어우러지고 그림이 뒷 배경이 되어주면 저자와 함께 걷는 즐거움을 조금 더 느끼게 된다.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 끄덕이며 살아야겠다. '안돼! 못해'가 아니라 그냥 고개 끄덕이며 긍정의 변화를 느껴보고 싶다.


최근 몇 년간 캠핑 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텐트와 코펠 등의 장비는 없지만, 국립공원 등의 시설을 활용한 글램핑에 마음을 빼앗겠다.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이 책에서 그 이유를 말해 준다. 사내들이 캠핑을 하는 이유는 불을 피우기 위해서라고. 잃어가는 삶의 의미를 되살리고 싶은 간절함에 캠핑을 하는 것이라고. 중년의 남자들 고개 숙이고 힘 빠지는 인생들이다. 더 이상 오르고 싶은 욕망도 새로운 도전도 큰 벽 앞에서 멈춘다. 갈 길 잃은 어린양처럼 헤매다 삶의 길도 잃어버린다. 약해지고 잃어가는 삶의 의미를 장작불로 화려하게 다시 불태우고 싶은 것이다.


삶은 외롭다. 가끔씩 격하게 외로울 필요도 있다. 고립을 통해 몰입의 기쁨을 만날 수도 있고 바쁜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허해지고 공허해지는 삶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해 보는 것이다. 타인의 삶, 아들로 남편으로 아빠로 가장으로 그리고 직장인의 이름에서 벗어나 내 이름대로 살아봐야 한다. 내가 원하는 길을 찾고 도전해 보는 삶이 외로워도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길이다. 그 길을 향하는 길은 가끔은 외로워질 수 있다. 그 외로움의 길을, 같이 공감하는 동반자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설렘'이라는 단어와 함께.


설렘이 있다면,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어도 풍요롭다. 기다리는 마음이 이렇게 기쁠 수 없다. 그래서 설렘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다.

꽂으면 그 열쇠의 주인공은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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