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에서의 설렘
서늘함을 막아보려 시작된 햇발이 찬바람에 밀려 어스럼 해지고 야맹증을 감추려는 듯 헤드라이트 불빛들이 춤추기 시작한다. 고단한 하루의 삶을 이겨낸 사람들의 발걸음에 흥겨움이 절로 묻어있다. 이맘때면 집이 그립고 친구가 그립고 술 한잔의 취기가 그리워진다. 그리워하는 이를 기다린다는 것 또한 고단한 하루를 이겨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다.
그 그리움도 잠시, 아늑한 집이 아닌 생경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참 낯설다. 그러나 이 낯섦이 싫지 않다. 왜일까? 그것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하며 아내에게 전화했었다. 아내가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이 여자가 왜? 이러지?라는 불안감이 일순간 엄습해 왔지만, 금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버스 안이란다. 그럼 그렇지! 다소곳한 목소리가 집이 아님을 바로 직감했었다. 내가 먼저 퇴근하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갑자기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싶어 졌다. 요 며칠 동안 아내와의 서먹한 관계를 정리하고픈 생각이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퇴근길 교통혼잡에 시달리는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청춘만화 같았던 연애시절 이렇게 아내를 기다려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하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난 평택 총각, 아내는 대구 아가씨여서 주중엔 기다림보다 그리운 마음만 애틋해졌었다. 저녁이면 서로에 대한 애틋함에 애꿎은 전화통만 몸살이 났었고, 애달파 기다리던 주말엔 먼저 퇴근한 아내가 커피 shop에서 기다렸다. 내가 기다리기 보다는 아내가 나를 기다려주었다. 주말 데이트를 위해 난 만사를 제쳐두고 대구로 go go~만 하면 될 뿐!
옛 추억을 뒤로한 채, 지금은 바람이 매섭게 부는 버스정류장 앞이지만 오고 가는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따사로움을 더해 준다. 그리고 잠깐의 행복했던 연애의 기억들로 겨울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이렇게 갑자기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이 쑥스럽다고 생각할 때 버스 2대가 내 눈앞에 들어섰다가 갑자기 두 곳의 정류장으로 나뉘어 갔다. 아차! 교차로에서 버스정류장이 양쪽으로 나뉘는구나라는 짧은 탄식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기다림이 아내를 놀래게 해주는 이벤트였는데 그 놀램이 먼발치로 도망가는 것만 같았다. 먼저 온 버스를 쫒아 아파트 앞으로 뛰어가니 그곳엔 아내가 없었다.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 큰 길가의 맞은편 정류장으로 뛰어갔다.
그 순간 그 길에서 낯익은 아내의 모습이 어찌나 반갑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자신 앞에 우뚝 선 나를 보며 살짝 멈추며 놀래는 듯 했다. 일단 이 정도만이라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색한 관계의 반전에 시작점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 눈빛으로만 반기며 소리 없이 함께 걸었다. 걷는 사이 우수에 젖은 듯한 아내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머문다. 횡단보도를 건너 쇼핑백과 핸드백을 내 손으로 자연스럽게 옮기면서 며칠간 어색했던 기억들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가끔은 소리 없이 조용히 기다려주는 것이 그 어떤 말보다 더한 애정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길엔 아내와 대화는 없었지만, 기다리고 설레고 옛 추억을 더듬는 애틋함이 차가운 겨울바람을 잊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말없이 걷는 이 길이 행복을 향해 걷는 우리 부부의 따스한 사랑의 길이 되면서 말이다.
결혼 17년차를 향해 열심히 항해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모습으로 만나 같은 모습으로 닮아가는 삶이 부부의 삶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태초에 처럼, 둘이 하나가 되어가는 삶이 창조주 하나님이 부부에게 주는 또다른 메세지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