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은 무책임하고 게으른 말이다. 몸의 게으름이 아닌 생각의 게으름에서 나오는 말인 것이다." 조한별의 <세인트존스의 100권 공부법> p.53
게으름이란 단어를 작은 의미에 국한해서 사용했다. 몸이 아니라 생각까지 게으를 수 있음을 알았다. 몸은 열심히 움직였지만 어딘가 나사 풀린 기계처럼 삐거덕거리는 삶이었다. '열심히'는 살았는데 '어떻게'라는 의미는 잊고 살았다. 그래서 갈 길과 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미국 GE를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잭 웰치 회장은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원했다. 워크아웃 프로그램이라는 토론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양한 질문과 함께 생각을 공유해 갔다. 이런 과정 중에 현장 작업자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회사는 참 바보다. 직원들의 몸만 쓰라고 하지, 함께 달려 있는 머리를 쓰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바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몸만 쓸 줄 알았지 머리로 생각하지 못했다. 열심히는 살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보지 못했다. 열심히 사는 방법은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며 사는 삶이었다. 그 틀 안에 놓인 긴 줄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 줄을 벗어나면 마치 큰 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불안해하며 살았다. 그래서 나에겐 성실한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성실하다고 행복하지는 않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이끌려가는 삶이었다. 주인이 아니라 종의 삶,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노비의 생산성이 낮은 이유는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 일에는 부지런하고 남의 일에는 게으르다. 몸은 자기 일이나, 생각은 남의 일로 치부하고 있다. 몸과 생각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결되어야 하는데 끊어져 있고 통해야 하는데 막혀있다. 내 몸은 내가 주인이지만, 내 생각은 노비가 지배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생각에도 노비근성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시키면 생각하는 노비근성. 입력하면 실행하는 로봇이 따로 없다.
게으름을 극복하는 길은 생각의 근육을 만들고 키우는 것이다. 생각의 근육은 운동처럼 끊임없이 단련해야 한다. 좋은 책을 통해, 좋은 글을 통해 그리고 나눔과 토론을 통해 내 생각이 점점 깊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드는 단련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근육에 살이 붙고 힘이 실리게 될 것이다.
그 힘으로 노예의 삶이 아닌 주인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