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지각을 했다. 20년을 넘게 직장 생활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다.
새벽녘에 눈을 떴다. 이불속에서 알람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다 조바심에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아직 5시 10분. '10분 있으면 알람이 울리겠네'라는 생각과 함께 이불속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핸드폰을 보니 30분이다. 왜? 알람이 안 울렸지?라는 의문을 가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의 스트레칭 이후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항상 힘겹다. 매일의 반복된 일상이 지칠 만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이 너무 좋다. 세수와 함께 머리까지 맑게 감고 나면 마음속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오늘은 은은한 샴푸 향이 기분을 더 돋궜다.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출근시간이 빨라지며 아침은 간단하게 먹는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은 부담스러워 혼자 간단하게 챙겨 먹고 출근한다. 오늘 아침은 숭늉이다. 숭늉을 냉장고에서 꺼낸 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불을 켜자마자 부스스한 얼굴의 아내가 거실로 나오며 한 마디 했다. (가끔 아내가 일어날 때면 부담스럽다. 아침부터 무슨 말을 할까?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이 아내의 말 한마디에 무거운 돌덩어리가 되곤 한다.)
"회사 안 가?"
"회사를 왜 안가. 가야지"
"그런데, 지금 뭐해? 늦게 출근해?"
무슨 이야기하고 있냐며 거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봤다. 분침이 50분을 향하고 있는데 시침이 7시에 근접해 있다. 아뿔싸! 지각이다. 출근이 7시인데 도저히 그 안에 도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순간 멍해졌다. 뭐지? 분명히 5시 40분인걸 확인하고 일어났는데... 핸드폰 알람 어플을 확인해보니 정상이다. 역으로 추정해보면 5시 10분에 눈을 뜨고 잠깐 잔 사이에 울린 알람을 무의식 중에 끄고 1시간 10분을 더 잤다는 얘기가 된다. 연차를 낼까? 생각하다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좀 늦을 것 같다는 메시지만 남기고 식탁에 앉았다. '이왕 베린 몸' '이왕 늦은 몸' 천천히 가자는 생각에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오줌을 참을 때 필요한 건 희망이 아니라 화장실이다." p.211
정상 출근할 수 있다는 희망은 헛된 것이다. 헛된 것을 붙들고 매번 헛물을 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 헛된 것이 오줌을 참는 일과 비슷하다. 오줌이 마려우면 화장실을 찾는 게 가장 현실적인 데 화장실보다 오줌이 스스로 없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 희망이라는 끄나풀 하나 움켜쥐고 사는 소시민에게는 희망 자체가 큰 고문이다. 언제 도래할지 알 수 없고 기약 없는 희망은 어쩌면 버리는 것이 더 빠른 대안이 될 수 있다.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차라리 포기하니 마음은 더 가볍다. 무슨 일이든 눈 앞에 닥치기 전까지가 힘겨운데 막상 닥치고 나면 어떻게든 시간은 가고 해결은 된다. 회사에 출근해서 지각처리 대신 반차로 정정했다. 20년을 넘게 생활한 회사이지만 지각은 처음이다. 이제까지 뭐 하며 살았는지 몰라도 참 버겁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기계도 아니고 휴가는 내고 가끔은 지각도 하면서 살아야지 꽉 막힌 틀 속에 갇힌 일벌레의 삶을 살아온 내게 짧은 후회가 된다.
사람에게는 숨구멍처럼 바람을 통과시켜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삶이 팍팍할 때 가끔은 일부러라도 구멍을 내야 한다. 막힌 숨을 쉬고 가로막힌 벽을 뚫어야 한다. 그 벽에 길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작은 숨구멍을 뚫는 것부터이다. 사람은 꽉 막히면 답답하다. 답답하면 소통이 안된다. 소통이 안되면 외로워진다. 외로워지면 삶은 더 팍팍해진다. 그런 팍팍한 삶에 지친 내 몸에, 오늘은 작은 숨구멍을 뚫은 날이었다.
가끔 지각하며 살자.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