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상처 받지 않으려는 욕심은 있을 수 있지만, 상처 받지 않는 삶은 불가능하다." <실격당한 이들의 변론> 추천의 글 p.5
1월의 첫날이다. 12월의 마지막 날이라고 썼다가 고쳤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해가 바뀌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 2020이라는 숫자가 아직은 익숙지 않다. 2019라 쓰고 2020이라고 읽는 형태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기억하기는 쉬워도 지우기는 좀 힘겹다. 살아온 길, 살아온 과정이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데 그 흔적을 지우려면 또 다른 흔적으로 덧입혀야 할 듯하다. 아픔은 또 다른 아픔으로 지운다는 말이 있듯 기억도 새로운 기억으로 지워나가는 것이리라.
한 해를 되돌아보면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넘치지만 막상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무언가를 손에 움켜쥐기 위해서 부단히 뛰었는데 막상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만 쫓아다니며 허상을 쫓다 한 해가 기울었다.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데 그 중간에 욕심이 들어차 있다. 삶에 욕심이 많아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움켜쥔 손을 펴고 죽는다. 점점 삶의 노하우가 쌓이면 움켜쥔 주먹을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또한 내 인생이다.
많이 가지려고 하다 보면 욕심이 들어서고 그 욕심을 추구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그 누군가가 주변인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상처는 쉽게 내지만 그 상처가 아무는 시간은 한 없이 길어진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은 맞지만 그 아픔을 맞아 보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말은 쉽다. 조언이랍시고 쉽게 내뱉는 말이 상처가 되고 그 상처가 때로는 곪게 되기도 한다. 말 한마디에 웃고 웃는 인생 그게 또 내 인생이다.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우리가 겪은 모든 고난과 어려움은 상처라기보다 더 강한 면역력 주사 한 방 맞은 것일 게다. 요즘 세대의 가장 큰 맹점은 자연과 함께하지 못하고 만들어진 공간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도시화되면서 하늘을 천장에 빼앗겼고 골목이 복도로 대체되고 말았다. 그 꽉 막힌 공간에서 생활하며 스스로 이기고 견디는 면역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래서 질병에 약해지고 더 강한 면역 억제제에 의지하게 된다. 내 손이 아니라 타인의 손에 의지하게 되는 인생이 되고 있다. 신묘막측하게 만들어진 우리 몸이 뾰족한 주삿바늘에 의지하며 살게 되는 세상이다.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처를 잘 피하는 요령도 필요하지만 다양한 상처를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아물고 나면 두려움이 옅어진다. 그 두려움의 이면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이름인 용기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다른 상처에도 대처할 대응력이 생기며 또 다른 상처에도 스스로 이겨 낼 면역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삶은 면역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다.
어려서부터 누구나 부러움을 가지는 좋은 환경에서 대우받고 살기보다 척박한 땅에서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그런 삶이 축복된 인생이다.
2020년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은 어색한 단어이지만, 누구나 축복받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하고 축복하고 싶다.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나는 복수초처럼 긴 겨울의 단단한 얼음덩어리를 깨고 나오는 도끼 한 자루씩 가져보자. 그 도끼로 얼음덩어리 깨고 씨앗을 심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2020년 되기를 기원한다.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