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나

by 글 쓰는 나그네


<품격 있는 나>

"삶은 일종의 연극이라는 사실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 큰 진실을 위해 거짓을 연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빛내는 데만 몰입하는 사람들은 작은 진실을 위해 큰 거짓을 연기한다. 나는 이를 '품격주의적 태도'라고 부르고자 한다." <실격당한 이들의 변론> p.50

삶은 연극이다. 희극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지만 꼭 흑백논리로 구분할 필요까지는 없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보는 소설적 요소도 가지고 있다. 극적인 전개와 더불어 울고 웃는 감동적인 서사 구조를 띠기도 한다. 그 속에는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하게 된다. 그들과 함께하며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뽐내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우리의 삶이다.

그러다 보니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가 달라질 수 있다. 어느 누군가는 보이는 것에 더 많이 치중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바라보는 다른 이가 주인공이 된다. 그들이 쳐다보는 것에 내 삶의 주파수가 맞춰 있다. 어떻게 보일까? 어떻게 생각할까? 가 주된 관심사가 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니라 관찰자 시점에서 내 삶이 전개된다. 화자는 나인데 다른 주변 인물들이 주인공이 되고 만다. 그들의 관심사에 일희일비하며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야 한다. 그들의 삶이 곧 내 삶이 된다. 보이는 나에게는 내가 없다.

바라보는 나는 어떨까? 삶의 전개 방식이 다르다. 여기에서는 내가 주인공이다. 아주 객관적으로 보이는 나를 보며 분리하려 한다.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듯, 보이는 내 모습과 바라보는 내 모습을 분리한다. 말이 쉽지 두 자아를 분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상처를 덜 받기 위한 고육지책의 한 방식일 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듯 한 사람 속에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생각까지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 바라보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보이는 나를 희생하는 꼴이다.

이렇게 다른 의미로 쓰이는 단어 중 하나가 '품격'이다. 품격(品格)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 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국가의 수준을 의미하는 '품위유지'로 쓰이기도 했고, 사회보장에 중심을 두는 '사람됨, 인격'을 말할 때 쓰이기도 했다. 품격이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품위라는 의미보다는 인격 또는 사람됨의 의미로 쓰이기를 바란다. 주변 환경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 남을 의식하며 사는 삶은 참 피곤하다.

연극이나 소설 같은 우리 인생을 더 아름답게 만들려면 타인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품격은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의 선택이 아니라, '품격 있는 나'가 되어야 한다.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노예의 삶이고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주인 된 삶이다.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살아야 품격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스스로에게 거짓말하며 살지 말자. 본능에 충실하라는 말처럼 '사람됨'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사람됨에 우선하여 살아간다면 연극이 끝나는 시점, 에필로그로 말할 것이다.

'너 참 잘 살았다고,
품격 있는 삶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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