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Dum vita est, spes est. (툼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모처럼 반려견 여름(몰티즈)이와 산책을 갔다. 자주 가는 편이지만, 대부분 아파트 주변만 돌다 돌아온다. 오늘은 아파트를 벗어나 뒷산으로 향했다. 마을 뒷산에는 사람들 왕래가 별로 없어 여름이랑 가면 자유롭다. 가끔은 그에게도 자유를 주고 싶어 목줄을 잠시 풀어주기도 한다. 목적지까지 갈 때는 옆에 꼭 붙어 다닌다.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으면서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며 풀냄새, 나무 냄새 그리고 흙이 풍기는 자연의 풍미를 마시고 뜯기도 한다. 아마 살아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끼는 시간일 것이다. 되돌아올 때는 앞서서 달린다. 아는 길이라는 의미일까? 가는 길은 몰라도 돌아가는 길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먼저 앞서다 뒤돌아보고 다시 앞서다 뒤돌아본다. 숨 죽이고 눈치 보며 걷는 것보다 이런 게 살아 숨 쉬는 것이 아닐까? 자신감 있고 주도적이며 당당한 모습 ^^ 숨 쉬고 살아간다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가두고 살면 그게 감옥이지 집은 아니다. 지금 폭풍처럼 유행하는 중국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자가격리, 병원 격리 치료 중에 있다면 이것 또한 감옥일 수밖에 없다. 사방이 경계가 가능한 판옵티콘의 감옥처럼 감시망이 철저하다. 북한의 5호 담당제(전 세대를 5호씩 나누어 그 속에서 감시 진행하는 방식)처럼 주변 주민은 외면하고 지방정부가 체크하고 중앙정부가 감시하는 체계이다. 여기에도 허점이 있어 뚫리고는 있지만 감시의 눈초리가 매섭다. 집은 쉼과 자유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2주간 자가 격리하고 있다면 이게 집일까? 감옥일까?
"집은 '하우스 house'이지 '홈 home'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지적하신 겁니다. House과 Home은 전혀 다릅니다. House는 벽돌로, home은 사랑과 믿음으로 지어진 거예요." -이어령, 김재철 대담집 <지성과 영성의 만남>-
집에 대한 의미 부여가 가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큰 갈림길이 될 수도 있다. 사랑과 믿음이 기반이 되어야 든든한 home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외면의 겉치레에 치중하기보다는 내면의 속 사람이 속사랑이 되도록 더 사랑하고 더 믿는 가정의 모습이 집이고, Home이다. 이 Home에 갇혀 있는 지인이 있다. 그는 군인이다. 딸이 스튜어디스인데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군에서 자가격리 명령이 떨어졌다고 한다. 갇혀 있어 답답하지 않으시냐 물으니, 그래도 아내와 함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주말부부였는데 함께 있게 되어서. 하루에 4번씩 전화가 와서 체크하고 있고 군 전산 내부망에 접촉하면 안 되는 기피대상으로 선정되어 있다고 한다. 스스로 순응하며 자신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혹시나 하는 피해를 안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삶이 있는 한, 다시 근무하고 돌아갈 희망이 있기에 견디는 것이다.
[ Home ]
얼마 전, 딸과 둘이서 '남산의 부장들'이라는 영화를 봤다. 항상 강력한 독재자는 최측근에 의해 배신(?)을 당한다. 딸에게 물었다. "저런 상황이면 너라면 어떡할래?" "아무리 잘 못해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죠" "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사건으로 역사의 흐름이 바뀌었지 않았니?" "그래도 정당한 것은 아니죠. 솔직히 얘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세상과 부딪히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남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정직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어" "그러면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다시 시작해야죠" "딸! 삶이 그렇게 쉽지 않아. 아빠 나이가 되어도 정의롭게 살겠다고 외치지만, 가장이라는 짐의 무게에 눌러서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똑바른 길이 아닌 비탈길을 택할 때가 있어. 올바르게만 사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 " 이렇게 이야기하다 멈췄다. 한 때의 나도 대안은 없지만 저렇게 올곧았는데. 너무 많은 생각의 홍수 속에 살아가다 정직과 올곧음을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 점점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되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키리카우하 추장인 코키스의 말이 생각난다. "햇살처럼 구부러짐 없이 써라" 그렇다. 햇살처럼 구부러짐 없는 삶, 딸의 삶, 청년의 삶은 이래야 한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기에 살아가려면 햇살처럼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글도 햇살처럼 쓰자. 세상의 내 모습과 내면의 내 모습이 싸우더라도 구부러짐 없는 글, 이런 글이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