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by 글 쓰는 나그네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글쓰기의 기본은 잘 읽는데서 출발한다. 잘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잘 보아야 잘 만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보이는 것이 달라져야 쓰는 것도 달라진다. 글쓰기의 절반은 읽기에서 시작된다. 읽기 없이는 쓰기도 없다. 그래서 독서를 하고 사설을 읽고 때로는 다른 이의 글로 모방을 하기도 한다. 계속 읽고 계속 쓰면서 글이 앞으로 나아간다. 길눈이 어둡다는 말처럼 글눈이 어두우면 갈지자의 행보로 이어져 술주정뱅이와 같이 도돌이표만 잔뜩 붙은 글이 되고 만다.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것은 무언가를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거나, 쉼표가 없는 문장처럼 끊지 못하는 지겨운 글이 된다.

좋은 글을 쓰려면, 내 안에 우물이 먼저 넘쳐야 한다. 읽는 것이 많고 생각하는 것이 많아 내 안에 넘치는 것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넉넉한 물을 가질 수 있다. 넉넉한 물이 글쓰기의 좋은 무기가 된다. 차고 넘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쏟아 낼 것도 많다. 쏟아내고 쏟아 낼 이야기가 넘칠 때 글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렇게 무언가가 넘치고 몰입하는 사람을 '마니아'라 부른다. 이들은 어딘가에 미쳐있다. 어딘가에 꽂혀 있어 그것에 집중해서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들에게는 그것 밖에는 안 보일지 몰라도 그것 만큼은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글쓰기도 확실히 자기 만의 색채를 만들어야 한다. 그 색채가 문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안고수비(眼高手卑)'라는 말이 있다, 마음은 크고 눈은 높아도 재주가 모자라 손이 눈을 따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손이 눈이 따르지 못하더라도 우선은 눈은 높여야 한다. 보는 것을 재차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는 게 아는 것이고 아는 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세상이기에 우선은 보는 눈을 넓고 높고 크게 키워야 한다. 눈이 높아지면 생각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

"글자로 되어 있지 않은 책을 읽을 수 있어야 바야흐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 절묘한 구절을 얻을 수 있다(能動無字之書 方可得驚人妙句)" -장조-

우리는 문자로 된 책을 읽고 글을 통해서 지식과 생각을 채운다. 보는 것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눈에만 집중해서 보고 있다. 그러니 읽기만 하는 바보, 책장만 넘기는 바보, 생각의 틀에 얽매인 바보가 되고 있다. 삶은 '무자지서'를 읽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그냥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하수에 그칠 뿐이다. 글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고 밖으로 밀고 나와야 한다. 컴퓨터 안, 책 속의 문자로 된 언어가 아니라 자연 속 언어를 찾아서 느끼고 보고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이런 글이 우리가 읽어야 할 글이다. 행간의 의미를 담고 글 안에 울림을 심고 싶다면 글자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고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봄을 넘고 앎을 넘어 문자에 구속되지 않고 하나님이 만든 살아있는 자연의 언어, 무자지서를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고대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 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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