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하며 살아야 할까?

by 글 쓰는 나그네


<착각>

과거를 보면서 현재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눈 앞에 다가 온 현실이 현재처럼 보이지만 모두 과거의 일에 의해 현재화되어 있다. 단지 지금 일어난 일처럼 착시현상에 속고 있을 뿐이다. 이런 대표적인 경우가 밤하늘이다.


"우리가 밤하늘을 보는 것은 말 그대로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오늘 밤의 하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몇 년 전, 적게는 2, 3년 전에서 많게는 100만 년 전의 하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 내보내는 빛이 지구에 와 닿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경험하는 것들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지금의 그가 아니라 과거의 문제아로 그를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 p.139-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마음속에 품고 산다. 모두가 그렇다는데 아니라고 말하며 나서보지만 사람을 바꾸는 힘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환경이 변하고 삶의 질곡을 깊이 경험해 보면 일시적으로 바뀌나 싶다가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 변하지 않는 사람을 붙들고 과거의 밤하늘을 쳐다보며 어쭙잖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간다. 그림 속의 단감은 주황색 물감일 뿐인데 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구름 속에서 사탕을 찾듯 헛되고 헛된 일인데, 아둔하다. 여전히 밤하늘의 착각에 빠져 있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는 밑줄 친 문장이 있다. 요즘은 낮게 나는 새가 더 자세히 본다는 말로 뒤집어서 얘기한다. 성공과 인생역전의 풀 스토리를 중시하던 시대에서 디테일을 강조하는 시대로 전환하며 더 자세히 보는 안목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안전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너무 높게 나는 새보다 낮게 날면 훨씬 안전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너무 낮게 날면 '안전하다'는 착각을 주기 때문이다. 착각하게라고 쓰고 여러 번 읽다 '착하게'로 발음된다. 이상하다. 전혀 다른 의미인데 착각이 착하다로 변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인간은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人間)를 지속하며 착각하는 삶이 착한 삶으로 변신한다.


가장 높게 날든 가장 낮게 날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날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하지 않나. 단막극이 될지 장막극이 될지 몰라도 함께 살아가려면 착각하며 사는 삶도 필요하리라.

사랑도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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