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큰형의 전화 큰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안부전화의 성격이었지만 주된 이유는 어머니 관련 내용이었다. 작년 가을 무렵 어머니가 갑자기 심한 복통을 호소하셨다. 때마침 작은누나 부부가 곁에 있어서 급하게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지병인 당뇨에 원인모를 복통과 폐결핵까지 앓으시며 죽음의 위기에까지 직면했었다. 위기를 넘기신 후, 다시 뵈었더니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의 모습으로 지치고 구부정해진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퇴원 후 기적처럼 호전되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다 지금은 혼자 동네 한 바퀴 돌아다니실 수 있는 기운은 차리고 계시다. 형제들이 고민하다 요양보호사 신청을 했다. 그 전에도 했었지만 마지막에 어머니가 안 하시겠다고 하셔서 신청 취소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큰 형에게 처음으로 짜증을 냈었다. 더 설득을 했어야지 안 하시겠다는 말 한마디에 그렇게 빨리 취소할 수 있느냐며 따지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마 막내의 뜻밖의 대응에 화도 났을 거고 황당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가족 일에는 대부분 말 잘 듣는 막내 동생이었으니 말이다.
l 요양보호사 신청 그렇게 어렵게 다시 설득하고 신청해서 요양보호사 지원을 받고 있다. 월 2회 목욕과 주 2회에 방문해서 식사 및 청소와 함께 말벗이 되어드린다. 시골이라 혼자서는 목욕하기 힘드시기에 답답하셨는데 첫날 목욕차를 통해 받고 기분 좋으시다며 전화가 왔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제 큰 형에게 전화해서 요양보호사 지원을 안 받겠다고 선언을 했다. 그것도 마을 경로당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큰형도 기분이 얹잖은 상태에서 어머니에게 한번 더 얘기해 보라는 의미로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막내아들 말은 그래도 더 경청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경로당에서 말했다는 말에 숨은 뜻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로당에는 마을 어르신들의 집합 장소이다. 그곳에서는 온갖 말들의 향연이 벌어진다. 누구 아들이 어떻고 어느 집 며느리, 손주가 뭘 했는지 그런 이야기들로 뽐내고 사시는 분들이 많다. 가끔은 순수한 이성만 가지고 사시기에는 버거운 장소가 되기도 한다. l 어머니와 통화 전화를 끊고 어머니에게 전화했더니 경로당이다. 평소 5시 정도면 돌아가시는데 오늘은 8시가 넘도록 그곳에 계셨다. 저녁까지 먹고 따뜻한 바닥에 드러누워 이야기하고 계시다고 했다. 가끔 경로당에 계실 때면 일부러 더 친근하게 대해 주신다. 나 또한 경상도 사내의 말이 아니라 경기도 말투로 부드럽게 말한다. 다 들리라고 그렇게 친근하다고 일부러 보이는 퍼포먼스의 성격이 짙어지지만, 이렇게 대화하면 엄마와 아들이 아니라 편안한 오누이의 관계처럼 달달하다. 다정한 이야기만 짧게 나누고 집에 가시면 전화 달라고 얘기하고 끊었다. 집으로 돌아간 후 전화가 왔다. 우선은 형과의 통화내용에 대한 사실여부를 묻고 이유를 물었다.' 왜? 요양보호사를 안 하시려 하느냐?'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돈'이었다. 작은 자형의 직장문제, 큰형과 작은형의 뻔한 가정살림 그리고 막내아들 손주들 학원비와 직장의 어려움 등. 다양한 문제들이 돈이라는 걱정거리가 되었고 그에 대한 미안함을 덜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의 말 한디에 마음이 상하신 것도 있었다. 어머니가 여든다섯이신데도 혼자 밥 할 수 있는데 왜 요양보호사를 쓰냐며 무심히 던지는 말에 상처를 많이 받으신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경로당에서 큰형에게 큰소리로 말한 것일 게다. 우선 요양보호사가 불편하신지 물어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비용과 주변분들의 시선 문제만 정리하면 될 사항이다. 어머니께 상세히 설명드렸다. 첫 번째, 비용은 5만 원 정도밖에 안 든다. 나머지는 국가에서 지원해준다. 자녀가 다섯 명인데 그 5만 원 비용 부담을 못해서 요양보호사 지원을 못 받는 것이 말이 되냐며 전혀 부담가지 말라고 했다. 5만 원도 안 쓰고 모으면 되지 않냐는 말에, 나중에 다시 편찮으시면 다시는 받지 못할 거다. 그리고 갑자기 편찮으시면 그분이 연락하고 챙겨줄 수 있다. 항상 자주 들리지 못하는데 자식들 걱정도 해 주시는 게 맞지 않냐며 설득했다. 두 번째, 주변분들의 시선 문제는 그분들이 샘이나서 그런 거다. 부러워서 딴지 거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면 안 되니 어머니만 생각하라고 전했다. 또 누군가 얘기한다면 아들, 딸, 며느리들의 등살에 안 하면 안 된다고 말하라고 했다. 경로당에서의 통화는 부드러운 경기도 억양의 버전이었다면, 지금은 투박한 경상도 뱃사람의 버전으로 얘기했다. 그것이 어머니께는 더 잘 통한다.
l 어머니의 모퉁이 돌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다. 늙어가는 자녀들의 돈 몇 푼에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알 것 같다. 지난번 자세히 설명드려도 잊어먹고 다시 도돌이표가 되어 걱정한다. 어머니의 삶에서 '걱정'이라는 단어를 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걱정이 곧 어머니의 삶이고 어머니의 삶이 걱정의 연속이다. 그렇게 걱정의 탑이 쌓여 있는 어머니에게서 걱정이라는 모퉁이 돌 하나를 빼내면 아마도 무너져 버릴 것이다. 끈질기게 힘겨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이 그 모퉁이에 박힌 걱정이라는 돌 덩어리들이다.
그래서 걱정하지 마시라고 강하게 얘기했지만, 요즘은 적절하게 걱정하고 사시라며 놓아드린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음을 뒤늦게 알았기에...